청류에 발 담그니 신선놀음 따로없네… 이중환 ‘택리지’서 극찬한 단양 선암계곡

입력 2013-07-31 17:28


“삼선암은 고을 서남쪽 두메 가운데에 있다. 산중에 큰 시냇물이 돌로 된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데 시내 바닥과 양쪽 언덕이 모두 돌이다. 언덕 위에는 기이한 바위가 있어 어떤 것은 작은 봉우리도 되고, 어떤 것은 평상을 편 것 같으며, 어떤 것은 성에 벽돌을 쌓은 것 같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의 복거총론에서 충북 단양의 삼선암을 답사한 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복거(卜居)는 살 만한 곳을 가려서 정한다는 뜻으로 이중환은 조선팔도를 둘러보고 저술한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서 “훗날 삼선암을 다시 찾아 신선놀이를 하고 싶다”고 할 만큼 유독 삼선암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삼선암은 단양팔경 중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을 이르는 말로 선암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삼선계곡으로도 불리는 선암계곡은 단성면 가산리에서 별천리까지 이어지는 10㎞ 길이의 계곡. 중부내륙지역 제1의 탁족처라 해도 손색이 없을 선암계곡은 남한강으로 흐르는 월악산 물줄기로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남한강 합류지점에서 59번 지방도를 타고 선암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형형색색의 텐트로 단장한 소선암오토캠핑장이 짙은 초록 속에서 여름나그네를 유혹한다. 이곳에서 조금 이동하면 길가에 냉천(冷泉)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냉천은 홍수로 유실된 옛길을 대신해 도로공사를 할 때 암벽사이로 터져 나온 약수. 졸졸졸 흘러나오는 여느 약수와 달리 냉천은 한여름에도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냉천을 지나면 바로 소선암공원이 나오고, 계곡 건너편에는 단양군에서 운영하는 소선암자연휴양림이 짙은 녹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산림복합휴양관과 다양한 크기의 통나무집 등으로 구성된 소선암자연휴양림은 선암계곡을 물놀이장으로 이용할 수 있어 인기. 주변에 단양팔경은 물론 도락산과 황정산 등 명산도 많아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단양팔경 제6경인 하선암은 삼선암 중 가장 돋보이는 바위이다. 마당바위로 불리는 3단의 너른 반석 위에 신선바위로 불리는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올라 있어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하선암 앞의 소(召)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다. 봄철에는 온 산을 뒤덮는 진달래와 철쭉이 꽃동산을 만들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선경을 이뤄 시인묵객들이 가장 많이 찾던 곳이다.

하선암은 계곡 건너편에서 감상해야 제멋이다. 물살이 센 무릎 깊이의 여울을 가까스로 건너 하선암 건너편 계곡에 서면 장마로 불어난 물이 여울져 흐르는 모습이 마치 비단이 바람에 펄럭이는 듯하다. 너럭바위 위에 올라앉은 둥근 바위는 한 송이 연꽃이 막 꽃잎을 피우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선암 일대의 드넓은 너럭바위는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즐기면 한여름의 무더위가 씻은 듯 사라진다.

중선암은 하선암에서 2㎞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단양팔경 제7경인 중선암은 삼선계곡의 중심지로 조선 효종 때 곡운 김수증이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두 마리의 용이 용틀임하는 형상의 쌍용폭포와 옥렴대 명정대로 불리는 두 바위 틈새로 흐르는 계류는 바라만 보아도 시원하다.

조선시대에 풍류를 즐기기 위해 중선암을 찾은 선비들은 선암계곡의 감동을 가슴에 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바위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겼는데 그 숫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선암 글귀 가운데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두 줄로 새겨진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秀石)’. 단양 영춘 제천 청풍 등 4개 군의 명승 가운데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중선암 일대는 하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류와 소, 그리고 암벽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장마철에는 계류의 흐름이 빨라 야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출렁다리 아래에 위치한 소는 물이 깊지 않은데다 나무 그늘도 적당해 여름철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늙은 나무가 있어 어떤 것은 눕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여 얽혀 있다. 시냇물이 길게 우묵한 돌에 이르면 돌구유에 물을 담은 것 같고, 동글게 오목한 돌에 이르면 돌가마에 물을 담은 것 같다. 물과 돌이 서로 부딪치며 밤낮으로 시끄러워서 물가에서는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장 리얼하게 묘사한 이 글은 상선암을 두고 이른 말이다. 단양팔경 제8경인 상선암은 중선암에서 상류 쪽으로 2㎞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변에 위치한 아치형 콘크리트 다리 아래의 바위가 상선암으로, 선조 때 학자인 수암 권상하가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상선암은 사각기둥 형태의 돌 여러 개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형상으로 삼선암 중에서 가장 기묘하다.

층층이 몸을 맞댄 바위틈으로 힘찬 계곡물이 휘돌아 흐르고 수심이 2m도 넘는 소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에 깎여 나가서 석벽을 이룬 바위와 계곡물이 폭포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단지 옆으로 도로가 지나고 다리가 있어 계곡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것이 흠.이다.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은 선암계곡을 일컬어 ‘신선이 노닐다 간 자리’라 하여 삼선구곡으로 명명했다. 구곡(九曲)은 경치가 빼어난 곳을 이르는 말로, 삼선구곡은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과 함께 아홉 구비의 명소가 있다는 뜻이다. 거듭된 수해로 집채 크기의 바위도 휩쓸려버리고 계곡을 따라 달리는 도로 때문에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하선암 둥근 바위에 새겨진 일곡(一曲)을 비롯해 선암계곡에는 구곡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선암계곡에서 신선놀이를 하고 싶다고 한 이중환처럼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주유하다 잠시 다리쉼을 겸해 탁족을 즐긴다면 바로 그곳이 ‘삼선십곡’이 아닐까.

단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