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기부금 운용 손본다] 회계처리 주먹구구… 말 많고 탈 많은 판도라상자
입력 2013-07-31 04:28
박근혜정부가 시민단체의 기부금 운용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은 국민들로부터 걷은 돈이 ‘눈먼 돈’으로 둔갑해 잘못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보수 및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 시민단체 특성상 어느 쪽이 주(主)타깃이 되느냐에 따라 정치적 논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온 시민단체들은 이를 받을 때나 사용할 때 세금공제 등 정부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왔다. 그 어떤 집단보다 광범위한 혜택을 누려온 것이지만 이들은 부실한 회계관리 등 자기들이 편리한 대로 기부금을 집행해 왔다. 사익(私益)이 아니라 공익(公益)을 추구해야 할 시민단체가 불투명한 기부금 운용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전반의 청렴도가 결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정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기부금 운용상의 문제는 참여연대와 바른사회시민연대 등 진보·보수 진영을 망라한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정부가 메스를 대기 시작하면 온갖 문제가 터져 나올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특히 이 과정에서 특정 단체를 겨냥한 표적조사 등의 논란이 야기될 경우 자칫 이념 문제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새 정부가 개혁의 칼을 들면서도 고민하는 부분 역시 불가피하게 생길 수 있는 정치적 논란 가능성이다. 본격적으로 손을 대자니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이 “우파 정권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덮어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정부도 기부금 운용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좌파 시민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할 수 없었다”면서 “재정 운영을 투명하게 하라는 정부의 주문을 마치 이념 대결인 것처럼 과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 초기에도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실이 시민단체들의 정부 보조금 집행 실태를 파악해 재정 운용이 불투명한 단체에 대한 보조금 삭감을 추진한 적이 있지만 진보 진영의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새 정부가 전 정부처럼 일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보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시민단체의 기부금 사용 문제에 숨통을 틔워주고 개별 시민단체별 재정 운용 상태를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진보 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