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덕분에 딸 암보험 되살린 80대, 은혜를 ‘사랑’으로 갚다
입력 2013-07-31 04:23
기초생활수급자 정성혜(58·여)씨에게 2002년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정씨가 다니던 경북 청도군 한 교회의 목사가 “신장을 기증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당시 정씨의 두 신장은 의사의 오진으로 치료가 늦어져 몇 년째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정씨와 가족들은 뛸 듯 기뻤다. 하지만 이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에서야 정체를 드러낸 기증자는 목사의 아내였다.
기적은 잠시뿐, 신장 이식 후 복용한 많은 약과 생활고는 고혈압과 당뇨, 심근경색을 불러왔다. 오랜 투병생활을 버티게 한 유일한 생명줄은 삼성생명의 종신보험이었다. 신장 이식 후 장해2급 판정을 받아 보험금을 추가로 납입할 의무가 없었고, 2009년까지 4440만원의 치료비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2011년 말부터 정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갖고 있지도 않았던 물건이 사라졌다는 혼잣말을 되풀이하자 가족들은 정씨를 다시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신장이식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림프종혈액암이 머리에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뇌암 치료를 위해 삼성생명에 연락한 정씨의 가족은 다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뇌암 판정을 받기 1개월 전, 정씨가 엉겁결에 보험을 해지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생활비 때문에 조금씩 쓰던 보험계약 대출 921만원의 미납 이자에 겁먹은 정씨가 저지른 실수였다. 정씨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다. 금감원이 살폈지만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 정씨가 삼성생명 대구지점을 스스로 방문해 서명했고, “보장만 남은 계약을 해지할 필요가 없다”는 직원의 권고를 무시한 점도 확인됐다.
금감원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삼성생명 임원들을 접촉하며 딱한 사연을 설명했다. 지난 4월에는 청도까지 내려가 정씨의 자택과 요양병원, 면사무소를 현장 조사했다. 정씨는 당시 “해지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에 재검토를 권유했고, 삼성생명도 의사들에게서 정씨의 인지능력이 비정상 상태였다는 소견을 얻어내는 등 힘을 보탰다.
지난 5월 23일 삼성생명으로부터 정씨의 남동생(56)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험금이 나옵니다. 암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정씨의 가족은 지난 3일 삼성생명에서 치료비와 사망보험금 등 7867만원을 지급받았다. 정씨처럼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 김금선(84)씨는 치료비를 제한 돈을 모두 기부했다. 11년 전 정씨에게 신장을 기증한 목사 부부에게 “내 딸처럼 가여운 이를 위해 써 달라”며 6000만원을 건넨 것이다.
정씨의 남동생은 30일 “누나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우리 생활이 미천하지만 혹시 보험이 살아나면 좋은 일에 쓰자’고 말했었다”며 “그 약속을 지키게 해준 금감원과 삼성생명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