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고질적 가격담합 형사처벌 검토해야

입력 2013-07-30 18:12

과징금 솜방망이, 그나마 면제되는 경우 많아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선진국일수록 공산품 값은 싸고 공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요금은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정반대다. 택시, 대중교통, 수도 및 이발요금 등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싸고 자동차, 휴대전화, 석유제품, 맥주 등 공산품 가격은 물가 수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인건비가 싼 편이라는 것 등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독과점 품목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근년에는 자장면 값, 미용실 커트요금 등 개인 서비스까지도 담합 사례가 적발되긴 했지만, 시장 참여자 수가 많은 개인서비스산업은 특성상 담합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가격 담합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주로 발생한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0년 기준 시장구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탕, 커피, 맥주, 승용차, 화물차, 정유, 담배, 위스키, 비료, 판유리 등 47개 사업에서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 현상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이들 품목 생산 업체들은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담합을 통해 손쉽게 과도한 이윤을 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47개 독과점 업종의 순부가가치비율은 31.1%로 광업·제조업 평균치인 26.8%보다 높았다. 특히 반도체(55.6%), 담배(52%), 맥주(49.6%) 등의 순부가치비율은 50% 안팎이었다. 문제는 독과점이 완화되거나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담합사례가 줄어들 조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담합으로 적발했거나 조사했던 품목들로는 라면, 설탕, 맥주, 교복, 석유, 시스템에어컨, 세탁기 노트북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과 관련해 외국 정부에 벌금을 많이 낸 상위 10개 기업 목록에 우리나라 대표 기업 4곳이 포함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9년간 화물차 가격을 담합해 온 현대자동차, 볼보그룹코리아 등 7개 업체에 과징금 1160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렇지만 가격담합을 주도한 현대자동차는 과징금 717억여원 전액을 면제받았다.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이용하는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가 이번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물론 담합은 입증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담합을 주도한 기업조차 가장 먼저 신고했다고 해서 과징금을 100% 면제하는 것은 징벌의 효력을 반감시킨다.

미국의 경우 담합과 기업결합 관련 독과점 사례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되는 연방거래위원회 대신 법무부 반독점국에서 검사들이 직접 수사한다. 독과점이 고착화되어 폐해가 심하면 드물지만 기업분할 명령까지 내린다. 우리나라도 담합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지금처럼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들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거쳐 결국 대법원까지 갈 바에야 처음부터 검찰이 수사하는 게 행정비용 등 여러 면에서 효율적이기도 하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소비자나 거래 기업이 직접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응징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