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는 ‘김영란 법’ 취지 제대로 살려라
입력 2013-07-30 18:09
‘김영란 법안’이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직자의 일체의 금품수수 행위를 막기 위해 입법을 추진했던 이 법안은 직무 관련성이 없는 금품을 받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후퇴한 채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선 원안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는데 한발 물러선 정부 안이 나온 것은 유감스럽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을 보면 공직자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되거나 지위·직책의 영향력을 통해 금품을 챙긴 경우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는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이 있는 경우만 뇌물죄로 처벌하는 현행 형법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다. 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는 2배에서 최고 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과태료는 형사처벌인 벌금보다 크게 낮은 단계인 행정벌로 전과 기록으로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직무와 직접 관련 없는 연고자가 스폰서가 된 비위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정부는 이번 법안을 ‘한국형 부패방지법’이라며 대가성 없는 공직자 금품수수나 부정청탁 등 한국 공직비리의 특수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과태료만 부과하더라도 문제의 공직자를 징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벌보다 더 큰 불이익을 주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법으로 우리 공직사회가 부패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고 5배의 과태료 처벌로 부정한 금품수수 행위를 제대로 차단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공직사회의 팔이 안으로 굽지 않고 서릿발 같은 징계를 부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난해 8월 입법예고된 ‘김영란 법’ 원안의 핵심 조항들이 후퇴함으로써 정부의 공직비리 척결 의지가 퇴색됐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준 점이다. 뿌리 깊은 부패를 청산하려면 철저한 의지와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직사회 부패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지만 정작 핵심 역할을 할 법안이 후퇴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반부패 기대가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부패 문제는 새 정부 초기부터 다잡아야 하는 데 실망스럽다.
이제 법안은 8월 초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국회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원안을 복원해 강력한 법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정부 안보다 더 후퇴하는 법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 이미 몇몇 의원들이 원안의 취지를 살린 법안을 발의한 상태고, 원안 추진을 약속했던 야당 의원들도 여럿이다. 여당도 외국에 낯들기 민망한 우리 부패 상황을 직시해 공직자의 뒷돈 관행 청산을 통해 사회 전체의 청렴도를 높여나갈 법을 만드는 데 적극 협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