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과 IT기술의 결합… 더 빠르고 똑똑하게 ‘스마트십’ 띄운다
입력 2013-07-30 17:37 수정 2013-07-30 17:40
“싱가포르에서 대만 가오슝으로 가는 항로에 파도가 높음. 항로를 변경해서 운항 바람.”
2016년 6월 27일. 두바이를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A해운 소속 1만TEU급(20피트 길이 컨테이너를 1만개 실을 수 있는 선적용량) 컨테이너선은 항로를 바꾼다. 인공위성으로 수집한 기상정보를 파악한 관제센터에서 새로운 항로를 지정해준다. 높은 파도를 헤치면서 이동하면 사고 위험이 높은 것은 물론 연료가 더 든다.
관제센터로부터 중국 상하이에 입항해 몇 가지 부품을 교체하라는 메시지도 왔다. 바꿔야 할 부품은 미리 준비된 상태. 입항해 화물을 내리고 싣는 사이 부품 교체도 빠르게 이뤄졌다.
이르면 2015년부터 ‘똑똑한 배’ 스마트십(Smart Ship)이 바닷길을 누빈다. 세계 1위 경쟁력을 자랑하는 우리 조선업과 정보통신(IT)이 만난 ‘창조경제’의 결과물이다.
◇조선업에 IT를 심다=현대중공업은 조선·해운업을 둘러싼 각종 여건이 나빠지면서 스마트십 기술이 등장했다고 30일 밝혔다. 국제유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데다 해운업 경기가 침체되면서 선주들은 연료를 덜 쓰는 선박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e-내비게이션’(선박의 모든 기관 상태를 확인·작동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스마트십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2011년 3월에 세계 최초로 스마트십을 선보인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 울산시, 중소 IT 업체 등과 손잡고 ‘조선해양IT 융합 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2세대 기술인 ‘스마트십 2.0’을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십 1.0’은 선박정보 모니터링 기술이다. 육상 관제센터에서 선박 내 부품·장치 정보를 위성으로 실시간 수집·분석한다. 수리·점검을 사전 준비할 수 있게 돼 유지보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스마트십 1.0’을 적용한 선박 170여척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마트십 2.0’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다. 날씨, 파도 등 기상조건은 물론 연비, 배출가스 등을 고려해 목적지까지 최적의 항로를 제시해 경제운항이 가능할 수 있게 된다.
◇‘조선 강국’ 이끄는 ‘똑똑한 배’=현대중공업은 지난 2일 ‘스마트십 2.0’의 핵심 장비인 디지털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선박의 눈’으로 불리는 디지털 레이더는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어 수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품목이다. 또 지난 17일에는 ‘선박 자세 최적화 솔루션’도 공개했다. 선박이 최고의 연비 효율로 운항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 이상기후 감지 시스템 등을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모든 기술이 갖춰지는 2015년이 되면 육상의 관제센터에서 기상상황, 주변 선박 운항정보, 각종 부품의 작동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분석하게 된다. 연료를 적게 쓰면서 빠르고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최적의 뱃길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경제 항로를 따라 움직이면 연간 3%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각국 조선업체가 프로펠러나 선체 설계를 바꿔가며 연료비를 1%라도 줄이려 애쓰는 동안 우리는 단숨에 3%를 아끼는 셈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IT 기술을 조선업에 이식시켜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려 ‘조선 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