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레인 빅토리號

입력 2013-07-30 17:33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6·25전쟁을 배경으로 1953년 발표된 인기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첫 소절이다. 1950년 12월 군인과 피란민 19만여명을 남으로 보낸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행가의 가사로 쓰일 만큼 극적인 작전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공세에 밀리면서 함경남도 흥남항으로 후퇴했다. 이곳에서 군인 10만5000명과 피란민 9만1000여명, 차량 1만7500여대, 화물 35만t을 실은 193척의 함대가 12월 15∼24일 남한으로 철수했다. 세계전쟁 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상철수작전으로 기록됐다.

이 작전에 화물선이었던 ‘빅토리’호가 대거 동원됐다. 당시 마지막으로 흥남항을 떠났던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경우 7600t 규모에 탑승 정원이 60명에 불과했지만 인류 역사상 단일 선박으로는 가장 많은 1만4000명의 피란민을 태워 2004년 9월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배는 1993년 고철용으로 중국에 판매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45년 LA항에서 건조돼 6월 27일 처녀항해를 시작한 ‘레인 빅토리’(Lane Victory)호도 흥남항에서 피란민 7000여명을 태우고 거제도 장승포로 향했다. 배의 총 길이는 138m이고 최대 용적은 1416㎥, 속도는 17노트(시속 약 31㎞)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서도 활약했다. 흑인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1882년 세워진 레인 대학(Lane College)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배는 현재 미국 LA 인근 샌 페드로 항에 정박한 채 전쟁 유물과 사진들을 전시하는 박물관 및 기념관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 ‘타이타닉’ 등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매년 여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연안 크루즈를 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에는 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 행사가 레인 빅토리호 선상에서 있었다. 참전용사, 미국 시민, 한국인 등을 태우고 태평양 연안을 약 9시간 기념 항해하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는 2011년부터 레인 빅토리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2016년까지 장승포항 일대에 9만9000㎡ 규모의 ‘흥남철수작전 기념공원’을 만들고 이 배를 연안에 정박시켜 관람객들을 위한 역사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국 주요 사적지로 지정돼 있는 만큼 난관이 적지 않다. 역사의 현장에서 활약했던 레인 빅토리호를 한국에서 직접 볼 수 있을지 관심이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