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자기 반성’…최태원 회장 이례적 2년 높여 6년 구형
입력 2013-07-29 22:00 수정 2013-07-30 01:31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최태원(53) SK그룹 회장에게 검찰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구형했다. 1심 구형량보다 2년이 늘었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형량을 높여 구형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1심 구형이 너무 약했음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 1심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이 수사팀의 ‘징역 7년’ 의견 대신 ‘징역 4년’을 고수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29일 진행된 최 회장 항소심 결심 재판에서 “최 회장이 최종 결정권자로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6년을 구형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최 회장에 대해 “법 위에 군림하면서 국세청·검찰·법원 등 국가기관들을 기만하려 했다”며 “무소불위의 현대판 리바이어던 같다”고 말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괴물로, 인간의 힘을 넘는 매우 강한 동물을 뜻한다. 검찰은 1심 구형 때도 최 회장을 이에 비유했다.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50) 부회장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항소심에서 범죄 혐의가 추가되지 않았는데도 검찰은 구형량을 50%나 높였다. 역설적으로 1심 구형량이 낮았다는 의미다. 대법원 양형 기준상 300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범죄는 징역 5∼8년이 기본 양형이다. 계열사 돈 45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의 최 회장도 이 범위에 속한다. 이 기본 양형 범위에서 감경 요소를 감안해야 징역 4∼7년으로 낮아진다. 사실상 검찰은 1심 재판 때 법적 테두리 안에서 가장 낮은 형을 구형했던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항소심 과정에서 주범이란 정황이 명백해졌고, SK 직원들의 진술을 바꾸게 하는 등의 사법방해 행위를 가중 처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최 회장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한 데 대해 “조직적 위증과 허위 주장으로 소송을 지연시켜 혈세를 낭비했다”며 “엄정한 책임을 묻는 뜻에서 소송비용의 부담을 명하는 판결을 내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이 소송비용을 내도록 원칙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검찰이 이를 구형에 포함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최 회장은 선처를 호소했다. 최후진술에서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펀드를 너무 하고 싶었다”며 “김원홍(전 SK해운 고문)씨의 권유에 의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됐었는데 내 욕심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펀드 투자를 위한 출자에 관여했지만 김씨의 불법적 권유에 속아 넘어갔다는, 항소심 전략과 같은 맥락의 진술이다. 이어 “김씨를 10여년간 믿어왔는데 항소심을 통해 어떻게 배신을 당했는지 보면서 원망도 들고 화가 났다”며 “다시는 욕심이나 두려움에 굴복해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마지막 변론에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범죄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알쏭달쏭한 진술을 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뉘우치는 게 아니라 가벼운 형을 받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고는 다음달 9일이다.
정현수 나성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