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덩어리’ 폐형광등 함부로 버려진다
입력 2013-07-30 05:08 수정 2013-07-30 16:16
서울 양재동에 사는 주부 김모(40)씨는 최근 오래된 형광등을 깨뜨린 뒤 다른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폐형광등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는 건 알지만 수거함이 있는 주민센터까지는 걸어서 10분이나 가야 했다. 29일 둘러본 서울 논현동 주택가에서도 폐형광등 수거함은 보이지 않았다.
‘수은 덩어리’ 폐형광등이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있다. 폐형광등은 환경오염 물질인 수은이 들어 있어 주민들이 아파트단지나 주민센터 수거함에 버리면 지방자치단체가 수거해 한국조명재활용공사에서 한꺼번에 처리한다. 학교 병원 등의 폐형광등은 한국조명재활용공사가 직접 수거해 간다.
그러나 한국조명재활용협회에 따르면 국내 폐형광등 수거율은 30%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된 형광등이 약 1억4천만개임을 감안하면 연간 1억개 정도가 그냥 버려져 매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광등 1개에는 수은 25㎎이 들어 있다. 토끼 한 마리를 즉사시킬 수 있는 양이다. 이런 형광등 1억개가 버려진다면 한해 2.5t 정도 수은이 유출되는 셈이다.
건물 철거 현장에서 나오는 폐형광등도 그냥 땅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폐기물 업체 관계자는 “어차피 형광등은 돈이 안돼서 한번에 수만개씩 매립하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기도 일대에 폐형광등을 수거한 뒤 굴착기로 부숴 매립해 버리는 업체가 있다고 들었다”며 “단속하려 해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손을 대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폐형광등이 안전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수은이 하천과 토양에 흘러들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수은 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폐형광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건 제재할 법규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조명재활용협회 정낙훈 국장은 “음식물쓰레기는 잘못 버리면 과태료를 물지만 폐형광등은 쓰레기봉투에 버려도 제재할 수 없다”며 “환경부가 하루빨리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광등은 수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성이 떨어져 재활용도 어렵다”며 “음식물쓰레기 수준의 규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