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후퇴 안된다
입력 2013-07-29 18:47
투자 빌미로 편법·부당행위 흥정하지 말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달 말까지 국세청에 증여세를 신고·납부해야 하는 과세 대상자 중 99%가 중소·중견기업이라고 하니 이들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대기업에 대해서도 과세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곤란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 투자가 아무리 절실해도 편법·부당행위까지 눈감아주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왜 시행했는가. 일부 대기업들이 총수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시장을 독식하고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중소기업들은 공정한 경쟁도 해보지 못한 채 설 자리를 잃으면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빗발쳤다.
현대차그룹의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일감 몰아주기 폐해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001년 3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면서 지난해 매출액이 11조7460억원으로 급증했다. 31.88%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인 정 부회장은 지주회사격인 글로비스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상속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SDS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SK C&C 최대주주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30대 그룹 재벌 일가가 최근 5년간 78곳의 일감을 몰아받은 기업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5000억원에 달한다. 재벌 오너들이 계열사들이 몰아주는 일감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세금 한푼 안 내고 부를 축적하며 대물림을 해온 데 대해 공평과세 차원에서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한 게 일감 몰아주기 과세다. 2011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내부거래로 매출액의 30%가 넘는 일감을 받은 회사 지분을 3% 이상 보유한 지배주주가 증여세 과세 대상이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시행도 해보기 전에 이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대기업 압박에 백기투항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로 연간 1000억원 정도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축적한 부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다. 시장 질서를 해치는 편법·부당행위를 감시하고 공정한 룰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핵심공약이기도 하다. 경제가 어렵다고 대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을 덮고 가려 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당근과 채찍을 절묘하게 운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려면 대기업 스스로 후진적 관행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 정직하게 기업 활동을 하고, 만약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증여했다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투자할테니 규제를 풀어 달라고 정부를 협박하고 읍소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