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태호] 문화융성과 고도 육성

입력 2013-07-29 18:46


중국 항저우(杭州)에 가면 서호변에 무너진 뇌봉탑이 있다. 그 유적 위로 철골에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새로운 탑을 만들었다. 무너진 탑의 잔해를 보고 탑 꼭대기에 만든 전망대에 서면 서호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묘하게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켰다. 유적도 보존하면서 장소의 가치를 시민이 활용한다. 고도(古都)의 보존과 개발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 머리를 잘 쓴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도시 내 역사유적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 법은 유적 자체만을 보호하는 데 그쳐 도시개발에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심지어 주택의 증개축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등 사유재산권 침해가 심각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근에 고도보존육성법을 제정하여 경주 공주 부여 익산 등을 고도로 지정했다. 문화재 주변 주민들의 불만을 해결하는 한편, 난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 정부는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해 고도지역 주민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고도보존육성법을 보면 고도의 역사적 진정성은 보존하되 생활환경 개선을 통해 도시를 살리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고도는 이미 역사경관이 많이 훼손되었으므로 과거의 도시 모습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도의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도시 활력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도를 대표적인 관광산업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고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선정했다. 다행인 것은 과거 단위 문화재 중심인 점적 보호에서 벗어나 고도의 역사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산 배정에 매우 인색하다. 올해 사업비는 그전부터 해왔던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비에서 과목만 바꿔 일부를 편성했다. 심지어 법에 있는 주민지원 사업비는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고도육성 사업은 문화재 보수정비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예산 편성 시 별도 세부사업으로 예산과목을 분리해야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지상주의 정책을 펴 문화정책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역사문화계에서는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정부예산 1%는 확보해야 한다고 줄곧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 5년간 문화재청 예산은 정부 예산의 0.17%, 4대강에 투입된 사업비의 10%에 불과한 2조5000억원 정도이다. 정부의 문화재 인식이 매우 낮았던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를 아우르는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공항 등 주요 기간시설은 어느 정도 갖췄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건설사업을 잘했다 해도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지 않으면 천박해 보인다. 고도의 역사문화 환경을 회복하고 잘 관리해야 문화국토를 만들 수 있다. 새 정부가 고도보존육성 사업을 국가 경영의 주요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민·관·학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고도육성 사업은 3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사업이므로 기관장 한 사람의 힘이나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로만 하는 게 아니다. 건전한 사고와 책임을 가진 시민이 참여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고도 주민들에게도 국민행복시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태호 (동국대 교수·조경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