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소설 열풍 반갑기는 한데…
입력 2013-07-29 18:45 수정 2013-07-29 22:28
올 여름 유례없는 ‘소설 전쟁’을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외 인기 작가들의 화제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소설 돌풍이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시장에 불이 붙은 건 지난달 정유정의 ‘28’,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에 이어 이달 1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출간되면서부터다. 최근에는 조정래의 ‘정글만리’,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이 가세하면서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피자 값도 안되는 도서구입비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7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하루키의 신작(4주째 1위)을 비롯해 소설이 6권이나 포함돼 있다. 그간 자기계발서와 힐링 서적에 밀리던 소설의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경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최종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책 사재기 파문을 딛고 일어선 소설의 선전이 반갑다. 하지만 편식과 쏠림 현상으로 외연이 확대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소수의 인기 작가 작품만 팔리고, 이들 작품을 찍어내는 곳도 자본력과 마케팅이 월등한 대형 출판사들이다. 중소 출판사들은 여전히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출판산업의 양극화다.
이를 반영하듯 전체 출판시장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올 1분기 출판산업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신간 도서 종수, 출판사 수 등이 전년 대비 각각 10% 이상 감소했다. 지난해 전국 가구의 월 평균 도서구입비는 어떤가. 통계청 조사 이후 처음으로 2만원대 이하(1만9026원)로 떨어졌다. 피자 한 판 값에도 못 미친다. 출판계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독서 수요의 지속적 침체에 의한 소비시장의 지반 침하→유통망 붕괴→도서 생산 감소라는 악순환이 확대되는 복합불황·구조불황이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이 최근 학술대회 발표문을 통해 진단한 출판산업 위기 구조의 심각성이다.
사실 출판 환경은 날로 척박해지고 있다. 책 읽는 풍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바빠서’다. 성인들은 일에, 학생들은 공부에 치여 책을 볼 여유가 없다. 다양한 영상·정보·오락 매체가 널려 있어 책에 손이 가지도 않는다. 게다가 스마트폰 확산은 이를 부채질한다. 초중고생의 70% 정도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의 주역들이 책과 친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보 검색이나 게임 등이 모두 손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스마트폰 의존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책 읽는 사회 환경 만들어야
출판인들은 정부의 정책적 관심을 절실히 요구한다. 완전한 도서정가제 정착, 출판유통 거래질서 정립, 도서구입비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을 제시하며 독서 친화적 사회 환경을 구축해 달라는 것이다. 현 정부 정책 기조인 ‘문화 융성’의 기초는 출판, 즉 책이다. 책 읽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출판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해도 시장의 본원적 수요가 창출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다.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지역사회와 기관, 업계, 시민들이 자발적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할 상황이 됐다.
존재와 삶의 문제,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힘이 담긴 책은 창의력과 상상력의 토대다. 이는 ‘문화 융성’ 차원을 떠나 개개인의 삶의 질과도 관련이 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여행 가방에 책 한 권 챙겨 넣고 떠나보자. 휴가지에서 소설에 취해 대중적 흥미에 흠뻑 빠져도 좋고, 인생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봐도 괜찮지 않겠는가.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