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 돕기 ‘강화도 트레킹’ 르포 “지난 실패 두렵지만 꼭 다시 일어나야죠”
입력 2013-07-29 18:21
시야를 가린 짙은 안개도, 매섭게 내리쬐는 햇볕도 노숙인들의 자활 열망을 꺾지 못했다.
29일 오전 인천 강화군 망월리 명신초등학교 앞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서울에서 망월리까지 이어진 도로는 안개 속에 잠들어 있었다.
오전 9시, 명신초교 운동장에 모인 노숙인 12명과 자원봉사자 12명은 가벼운 체조로 몸을 풀었다. 이날부터 4박5일간 진행되는 100여㎞의 도보여행을 위해서다. 노숙인들은 모두 비기독교신자지만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기도하며,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다독였다. 전날 서울에서의 사전 교육이 찜질방에서 진행된 탓에 모두 깔끔한 모습이었다. 외모만 보면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도보여행이 시작되자 인솔자를 따라 한 줄로 걷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그쳐 땅이 질퍽이지는 않았지만 비 온 뒤의 습기로 숨이 찼다. 오전엔 안개 덕에 걷기 수월했지만 오후엔 뜨거운 햇빛이 여행자들을 힘겹게 했다.
노숙인 남모(59)씨도 얼굴과 옷이 땀범벅이 됐다. 하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는 거리의 시끄러운 환경 때문에 낮과 밤이 바뀐 지 오래라고 했다. 남들처럼 직업을 가지려면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하는데, 예민한 성격 탓에 힘들다고 했다. 남씨는 “이번 여행을 통해 뒤바뀐 밤낮을 되돌리고, 번듯한 일자리를 얻어 자활에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숙인 김모(47)씨는 “거리생활을 하다 보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며 “자연에서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충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잦은 실패 경험 탓인지 여행 후의 변화나 기대감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한 듯했다.
이 여행은 노숙인 지원단체 ‘거리의 천사들’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홈리스대책위 등의 후원으로 마련한 ‘달팽이 도보여행’이다. 거리 노숙인의 자활의식 고취와 인내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노숙인과 자원봉사자가 1대 1로 함께 걸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강화도 둘레길을 따라 해안과 내륙을 오가며 약 100㎞를 함께 걷는다.
도보여행에 두 번째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이지윤(26·여)씨는 “교회가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동안 교회가 이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누군가의 삶에 대해 듣고, 내 삶을 나누는 것이 신앙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번 프로그램에서 함께 걸었던 노숙인들이 일자리를 구해 자립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가 가장 뿌듯했다고 전했다.
강화=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