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방열] 농구 작전타임과 같은 변화 필요

입력 2013-07-29 17:56


“사회기강 해이해져… 통치권에서도 국민 사기를 북돋워 국면 전환시켜야 할 때”

농구는 한마디로 ‘시간 경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어떻든 훈련의 강도가 어떻든 간에 농구 경기의 결판은 길이 28m, 너비 15m의 규정된 코트 내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활이 걸린 경기라고 해도 1쿼터 10분씩 40분, 쿼터 사이 휴식시간 2분씩 4분, 하프타임 휴식시간 15분, 여기에다 감독이 작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작전시간이 1분씩 5회, 모두 64분이다. 추가로 상대편도 작전타임 5분이 허용되니까 이 모든 시간을 합쳐 보면 결국 69분의 싸움이 된다.

제1, 2쿼터 20분에는 초반부터 주도권을 확실히 잡은 후 그 승기를 놓치지 않고 적당히 선수들의 페이스를 유지해 가며 경기를 잘 운영해야 한다. 또 감독은 선수들의 전열이 흐트러지거나 허점이 보일 때 재빨리 작전시간을 요구하고 제2쿼터와 제3쿼터 사이의 15분간 휴식시간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나머지 3, 4쿼터 20분을 금쪽같이 활용해서 마지막 순간의 대미를 장식할 때 비로소 승리를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중대한 경기를 끝내고 단 1, 2점의 안타까운 득점차로 패배를 했을 때는 “초반에 왜 그렇게 전열을 가다듬지 못 했던가”, “중반에 왜 그렇게 느슨한 경기를 했던가”, “왜 끝에 사력을 다해 밀어붙이지 못 했던가”라며 혀를 깨무는 후회를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런 시간의 엄정성과 공간의 한계성은 농구라는 경기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도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이라는 시간과 사회나 가정이라는 공간영역 속에서 이뤄지는 제한경기가 아니겠나 싶다. 신은 백년 미만의 엇비슷한 시간을 우리에게 주었고, 재능도 큰 차이나지 않게 나누어 준다는데. 짧은 생애 속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평범하게 일생을 끝내거나, 반칙만 하다가 경기도 마치기 전에 퇴장당하는 선수처럼 일찌감치 사회에서 격리되는 이도 있다.

우리 민족에게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성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원래 한민족에게는 한반도라는 아름다운 코트를 쓸 수 있도록 돼 있었는데도 현재는 남북이 넓지 않은 코트를 반쪽으로 나누고, 옹색한 3대 3 길거리 농구경기를 펼치는 듯하다. 하물며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나고 있는데도 우리들은 아직도 남북문제에 대해 시간의 귀중함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에는 국가라는 규정된 코트개념도 사라지고,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세계의 모든 민족이 올코트 프레싱으로 총력을 기울여 전원 공격대열에 가담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국가경영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를 벌이는 일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들의 전열이 많이 흐트러져 있고, 세계적 불황으로 국민 사기가 저하돼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창조경제’ ‘미래창조’ 구호 아래 개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얼마나 뜨거운 성원을 국민들이 보냈는가. 그러나 뜻하지 않은 국가경영상의 변수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 중국경제의 성장률 저하 등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남북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문제와 개성공단의 폐쇄 위기, 여론분열 및 노사갈등은 단기적으로 경제 주체들이 몸조심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사회전환기를 틈탄 일부 ‘예스 맨’ 정치인들의 맹목적인 충성심과 정신적 이완, 국민들의 방심이 겹쳐서 여러 가지 실책이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기강이 해이해졌다. 민심도 흉흉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차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이상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그 방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경기를 운영하는 감독이 국면 전환을 위해 작전 타임을 요구하듯이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권에서도 국민의 사기를 북돋워 국면을 전환시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방열(대한농구협회장·전 건동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