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기록을 찾아서] (8) 레이크플래시드 영웅 美 에릭 하이든

입력 2013-07-29 17:53


스피드스케이팅 5종목 석권

1980년 2월 25일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센터.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관중의 시선은 선수 한 명에 집중됐다. 그리고 이 선수가 1위로 들어오자 올림픽센터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바로 동계올림픽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피드스케이팅 전종목(500m·1000m·1500m·5000m·1만m)을 석권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이 기록을 세운 선수는 22살의 에릭 하이든(사진). AP통신, ESPN 등 해외 언론이 꼽은 역사상 최고의 스피드 스케이터이자 20세기 최고의 겨울 스포츠맨이다.

5살 때 아버지의 손에 끌려 스케이트를 시작한 그는 점점 두각을 나타내더니 17살이던 197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종합 2위에 올랐다. 당시 대회 우승자는 그보다 두 살 많은 한국의 이영하였다. 이후 이영하가 시니어 무대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과 달리 그는 세계 정상의 선수로 발돋움했다. 최고의 단거리 선수를 뽑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를 77년부터 4연패했으며, 최고의 장거리 선수를 뽑는 세계올어라운드선수권대회도 77년부터 3연패했다.

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은 그에게 최고의 무대였다. 개회식에서 선수단을 대표해 선서를 한 그는 전종목 석권을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다. 그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5개 종목을 뛰다보니 예선부터 결선까지 거의 매일 경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체력의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는 경쟁자들을 여유있게 따돌리며 1위에 올랐다. 4종목에서는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웠다.

올림픽 역사상 불세출의 영웅에게 수많은 광고와 협찬 제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지금 할 일은 학교에 돌아가 남은 학업을 마치는 것이다. 나는 내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다”며 모두 거절했다. 엄청난 금전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마추어리즘의 기치를 드높였다는 점에서 그는 스포츠 역사상 또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올림픽 이후 스케이트 은퇴를 택한 그는 스탠포드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사이클 선수로도 활동했다. 1985년에는 권위있는 미국 프로 사이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의사가 된 이후에도 그는 스포츠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자신을 스포츠맨으로 훈련시켰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도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 그는 NBA 새크라멘토 킹스 등 여러 스포츠 팀의 팀닥터로 일하고 있다. 특히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주치의로 오랫동안 근무한 그는 2009년 뼈가 부러지고 60바늘이나 꿰매는 대형사고를 당한 J.R 첼스키의 재활을 도와 이듬해 밴쿠버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를 따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