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클라이밍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 김자인 “즐기는 내 모습이 좋아요”

입력 2013-07-29 17:12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는 그가 ‘홀드를 잡느라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다’, ‘암벽화 때문에 발가락이 굽고 울퉁불퉁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세계랭킹 1위, ‘암벽여제’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한 과장이었다. 재활기간이라 그런지 발가락도 멀쩡했고 긴 손가락의 예쁜 손이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그는 앞머리를 곱게 땋아 귀 뒤로 넘기고 작은 귀걸이와 목걸이도 하고 있었다. 생글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그 나이 또래 아가씨였다. 하지만 홀드(등반할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턱)를 잡고 땅에서 두 발을 떼자 사람이 달라졌다. 집중으로 날카로워진 눈매, 매끈한 선 위로 도드라진 근육, 그의 몸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 그가 13살 이후부터 흘린 땀방울과 노력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다. 땅 위에서는 결코 다 알 수 없었던 암벽여제의 본모습이었다.

◇리드·볼더링·스피드 아우르는 ‘등반 천재’= 김자인(26·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지난 4월 프랑스에서 열린 2013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월드컵시리즈 2차 볼더링 대회에 참가했다. 9위로 마감한 1차 대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예상했지만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어 기권해야만 했다.

“예선전 4번째 문제를 완등하고 평소랑 똑같이 매트 위로 착지했는데 무릎 안쪽으로 꺾이면서 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이상이 생겼다 싶었지만 경기 중이라 5번째 문제까지 꾸역꾸역 마쳐 준결승에 올라갔는데 더는 안 되겠더라고요. 귀국해서 병원에 가니까 연골 빼고 다 다쳤다고 하더군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는 리드, 볼더링, 스피드 등 3개의 개별 종목이 있다. 리드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로프를 이용해 안전을 확보하며 15m 내외의 인공암벽을 완등하는 경기고, 스피드는 15m 높이의 벽을 빠르게 오르는 속도 경기다. 볼더링은 이와 달리 5m 내외의 낮은 벽에서 벨트 착용 없이 맨몸으로 4∼5개의 루트를 완등하는 방식이다. 홀드를 잡고 암벽을 오르는 것이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움직임이나 쓰는 근육, 근지구력 등이 달라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한 종목에 집중한다.

주 종목이 리드지만 김자인은 볼더링 부문에서도 세계랭킹 9위에 오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이번 부상이 유독 안타까운 것도 그 때문이다. 제 기량을 다 펼쳐볼 기회도 없이 상반기에 열린 5개의 월드컵 경기를 그저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자인은 “지난 겨울 볼더링에 비중을 두고 훈련을 했던 게 있어 아쉽긴 하지만 다행히 회복이 빨라 하반기 리드 경기들은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 지난 일은 빨리 털고 앞으로 나가는 그답게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경쟁자는 바로 나 자신”= 세계랭킹 1위 선수의 경쟁자는 바로 자신이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이 아사다 마오가 아니라 지난 시즌 자신이 세운 기록인 것과 같은 이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경쟁자다. 거기에 대회마다 조금만 순위가 밀려도 주변에서 말들이 많아진다.

“지난해 초반 부진했던 것도 그 이유 같아요. 요즘에는 외부 시선에 신경을 안 쓰려고 해요. 제가 이걸 더 재밌고 잘하기 위해 훈련마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국내 대회는 실수하면 안 되고 월드컵 대회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하니 부담감은 둘 다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 스포츠클라이밍은 다른 스포츠처럼 선수들끼리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완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요. 다른 선수들은 어찌 보면 한 코스를 같이 오르는 동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선수 대기실에서 선수들끼리 크럭스(등반 중 가장 힘든 지점)는 어떻게 넘을지 상의도 해요. 다른 선수가 완등하면 서로 축하해주기도 하구요.”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못 이겨”=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의 재미를 “어떤 홀드를 잡고 딛을까 생각하며 동작을 풀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불가능할 것 같던 코스를 최선을 다해 완등했을 때의 희열과 기쁨도 크다”고 덧붙였다. 옛말에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김자인이 꼭 그 경우다. 153㎝의 키는 서양 선수들과 비교해 결코 유리한 신체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단점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즐기면서 장점을 더 극대화하도록 노력한다. “키가 작은 반면 유연성이 좋아 발을 높이 쓸 수 있고 다양한 동작이 가능해 더 재밌어요.”

선수생활 은퇴 후 지도자를 꿈꾸는 김자인은 현재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 중이다. 공부가 실제 운동에도 도움이 됐다는 그는 “클라이밍만큼 본능적인 운동이 없다”며 “스포츠클라이밍을 너무 어렵게 생각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본능적인 몸짓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재미난 운동이라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만 클라이밍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집 주변에 스포츠클라이밍센터가 없어서 못 한다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곳곳에 스포츠클라이밍센터가 많아요. 또 살은 운동하면 자연스레 빠지니 한 번 도전해보세요.”

글 김 난·사진 박효상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

김자인은 누구

산과 등반을 좋아하는 부모와 클라이머인 두 오빠의 영향으로 13살부터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일반부에 출전해 우승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체코 부르노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에는 출전한 12개 대회에서 7번 우승해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 21일 프랑스 뷔앙송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월드컵 여자 리드 결승전에서는 부상을 털고 올 시즌 첫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지난 27일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28층 건물을 맨손으로 오르는 빌더링(buildering)을 30분 만에 성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산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암벽 등반을 인공 시설물을 이용해 즐기는 스포츠다. 원래 등반을 하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했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평상시 근력이나 테크닉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 목적으로 시작됐다. 실내에서 즐기는 스포츠클라이밍은 바닥이 고무창으로 된 암벽화 한 켤레만 갖추면 시작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초크(습기를 없애고 마찰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손에 바르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나 클라이밍 테이프(손가락 관절 부상과 찰과상을 방지하는 반창고)를 사용한다. 현재 실내외 인공암벽은 서울 지역에 위치한 30여개를 포함해 전국에 약 142개가 있다.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실내 암장은 높이가 3.5∼5m이며 등록비는 보통 한 달 기준 8∼10만 원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