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벤처협회 이은정 회장 “男女 기업인 조화이룰때 경제 탄탄”
입력 2013-07-29 18:30
“컵에 자갈을 넣었다고 꽉 찬 게 아닙니다. 그 틈으로 모래가 들어가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래와 자갈처럼 여성 기업인도 남성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여성의 강점을 경쟁력으로 키워 세상을 풍요롭게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경제시대에 여성 기업인이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서울 연희동에 있는 커피 전문업체 맥널티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여성벤처협회 이은정(49) 회장은 ‘모래’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갈의 빈틈을 채우는 여성 기업인은 어떤 모습일까. 흰색 정장에 분홍빛 립스틱, 그리고 환한 미소. 이 회장은 “일반적으로 여성 기업인이 남성 기업인과 경쟁하려면 남성 위주의 생태계에 모습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렸다”면서 여성성을 강조한 자신의 옷차림에 대해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여성벤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에게 지원할 수 있는 많은 제도를 만들고 알리기 위해 밤낮 없이 뛰었다. 정성이 통했는지 여성벤처협회는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진행하는 ‘선도벤처 연계 창업지원사업’, ‘창업 맞춤형 사업화 지원사업’에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 주변에서는 두 사업에 지원할 여성 벤처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6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관심은 뜨거웠다.
“선도벤처 연계사업으로 선정된 여성이 아직도 기억나요. 기업체에서 차 음료 디자이너로 8년간 근무한 이 여성은 귤차를 만들 때 잎만 사용하고 꽃을 버린다는 것을 알았죠. 그 꽃을 향수 등에 활용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여성의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겁니다. 여성의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주는 게 바로 내가 할 일임을 깨닫게 됐죠.”
보람도 있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 천장에 어려움도 느꼈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대기업 임원과 정부 고위 간부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이 회장이 ‘모판 이론’을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모판에서 볍씨를 키운 후 논에 심는 것처럼 여성 벤처가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모판 이론”이라며 “여성 임원 비율이 30% 정도 될 때까지만 지원을 해 달라”는 조건도 붙였다.
20여년 동안 커피 전문업체 맥널티를 경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이 회장은 대학 졸업 후 3년간 직장생활을 한 뒤 카페 프렌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커피 기업으로 꿈을 키웠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위기를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수입 커피를 유통·판매하던 중 외환위기가 터졌는데 오히려 커피를 국산화시키고 제조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공장을 설립하고 원료를 확보하려면 많은 돈이 들지만 당시 커피 메이커가 가정에 보급되던 때라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습니다.”
이 회장은 사람들이 커피를 내려 먹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필터와 액상 형태의 커피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제약업에 진출해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사람들은 커피 기업이 무슨 벤처냐며 질문들을 많이 해요. 어떤 기업이든 변화와 발전을 시도하는 벤처 정신만 있다면 벤처기업이라 생각합니다. 식중독균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충남 천안에 세운 공장은 식중독균을 옮기는 사람의 손을 100% 거치지 않고 커피 완제품을 만듭니다. 이게 기술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