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성화에 밀려… ‘일감몰아주기 과세’ 좌초 위기

입력 2013-07-28 19:02


대기업 총수일가의 부당이득을 규제할 방안으로 도입된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시작도 전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상반된 입장을 밝히는 등 정부 내부서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민주화가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 부총리는 지난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제주하계포럼에 참석해 “하반기에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요건을 완화하는 등 기업활동 지원을 통한 경제활성화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완화방안을 검토해 세제개편안에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줄이는 대신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겠다며 ‘재계 달래기’를 본격화한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내부거래 비율이 매출액의 30% 이상 차지하는 계열사의 지분을 3% 넘게 보유한 대주주나 친인척에게 증여세를 물리는 것을 말한다. 국세청은 대상자 1만명을 선정해 이달 말까지 세금을 신고하라고 통보했다.

정부가 과세 요건을 완화하겠다며 내세운 명분은 대상자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점이다. 대상자 1만명 가운데 30대 재벌 관련자는 65명에 불과하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중소기업의 경우 과세 요건을 그대로 적용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대주주 지분율이나 내부거래 비율 요건을 상향 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한정해 지분율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이 규정한 3%에서 5∼10%로 높이고, 내부거래 비율을 30%에서 40∼50%로 높여 과세 대상자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대기업에도 과세 완화 방침이 적용돼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는 대기업의 내부거래 이익 중 모기업의 지분을 제외한 금액에만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한 대기업이 내부거래로 10억원의 이익을 거둔 상황에서 모기업이 지분을 30% 갖고 있다면 7억원만 과세대상으로 잡는 식이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는 올해 일감 몰아주기 관련 세금 약 1000억원 중 대기업 총수일가가 내야 할 세금이 624억원에 이른다고 최근 분석했다. 대상자는 소수지만 금액 면에서 정책의 타깃은 총수일가를 향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 부총리가 대기업 위주 경제단체인 전경련 포럼에서 요건 완화를 약속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시행 전부터 김이 빠진 셈이다.

경제민주화 추진을 둘러싼 정책 일관성에도 흠집이 나고 있다. 앞서 지난 24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투자·경기 활성화가 필요하니까 경제민주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공정거래 차원의 경제민주화는 규제가 아니라 규범”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현 부총리의 발언은 이와 상반된 입장이다. 핵심 당국자 간 엇갈린 발언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러니 정부를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