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튀니지 유혈사태… 심상찮은 ‘아랍의 여름’
입력 2013-07-28 18:53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 아랍 국가에서 벌어진 시위가 밤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고 있다. ‘아랍의 봄’을 이룩한 이들 국가가 또다시 한꺼번에 소요사태를 맞은 점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민주 선거로 집권했으나 독선정치로 지난 3일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난 이후 이집트의 정정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의 유혈사태는 최악으로 평가돼 그 진행 과정과 책임 소재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이집트 언론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전역에서 벌어진 군경과 무르시 지지세력, 무르시 찬반 진영의 충돌로 최소 74명에서 최대 12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무슬림형제단이 무르시 축출 이후 지난 3일부터 군부 반대 시위를 벌여온 나스르시티 유혈 참사는 어둠이 짙게 깔린 27일 오전 2시쯤 시작됐다. 진압 경찰이 무르시 지지세력의 집결지인 나스르시티 라바광장에서 약 500m 떨어진 나세르 거리로 진격하며 최루탄 가스를 발사했다.
나세르 거리에 농성 텐트를 설치한 시위대를 겨냥해 해산 작전에 나선 것이다.
나세르 거리는 군인들이 장갑차를 배치하고 철조망을 설치한 채 라바광장 집회를 예의주시해 온 곳이다. 경찰의 발사가 본격화자 나세르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상자들은 응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서 11세 소년이 목에 총상을 입고 숨진 모습도 목격됐다. 환자들이 이송된 병원 관계자는 사상자 대부분이 저격수에 의해 머리와 목, 가슴에 총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엄청난 수의 부상자로 의료품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집트 사태에 대해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고 애매한 입장을 취해 온 미국 정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이집트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제를 촉구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이번 사태를 이집트에 ‘결정적 순간’이라며 극한상황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친무르시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27일 앞으로 이틀간 무르시 복귀 요구 집회를 전국적 규모로 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 역시 강경 방침에 변화가 없는 만큼 폭력 사태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010년 말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튀니지에서는 야당 유력 지도자가 잇달아 암살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지난 2월 좌파 정치연합 대중전선의 지도자 초크리 벨라이드가 무장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데 이어 지난 25일 세속주의 성향의 야당 정치인 무함마드 브라흐미가 괴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암살에 사용된 총은 같은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야권 지지자들은 암살 배후에 이슬람주의 집권당인 엔나흐다당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튀니지는 2년 전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을 몰아낸 뒤로도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이 대립해 왔다. 수도 튀니스에서는 브라흐미의 국장이 치러진 27일을 전후로 정부 찬반 세력이 충돌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리비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세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알둘살람 알 무스마리 변호사가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시위가 촉발됐다. 시위대는 그 배후에 무슬림형제단이 있다고 주장하며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정의건설당 사무실을 공격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