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막심 고리키 ‘은둔자’

입력 2013-07-28 18:24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1868∼1936)를 혁명문학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장편 ‘어머니’만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최근 출간된 단편집 ‘은둔자’(문학동네)를 처음 펼치면서 낯선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은 고리키가 작가 생활 내내 인간과 삶과 이념의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진실을 상당히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초기 10여 년에 걸쳐 발표한 단편들은 어린 시절부터 온갖 하층 직업을 전전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그대로 묻어난다. 1899년 깡마르고 허름한 차림새에 투박한 농민용 외투를 걸치고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난 고리키는 당대 문학인들에게 말 그대로 ‘민중 속으로부터’ 걸어 나온 인물이었다. 최하층 부랑자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된 고리키는 일약 러시아 저항문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고리키는 사후에도 소련 정권에 의해 문화예술분야에서 레닌에 버금갈 정도로 추앙됐으나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실제로 ‘별 예술성 없는 그의 문학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부풀려졌는지’를 논증하는 기사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 러시아 문학계는 다시 차분히 고리키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오히려 이념적 회오리에 사로잡히지 않은 보다 냉정한 재평가 속에서 고리키는 새롭게 조명됐다.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 작품인 ‘카라모라’엔 러시아 혁명 이후 새로운 인간관으로 발현하려는 고리키 자신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 그게 뭐야? 난 그런 게 뭔지 모른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주의는 나와 맞지 않는다. 나보다 작은 건지 큰 건지는 몰라도. 사회주의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회주의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이강은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