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경련, 재계 입장 걸러서 반영하길
입력 2013-07-28 18:09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5일 “기업들도 잘못한 게 있으면 조사하고 사법처리하는 것은 정부당국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의 기자간담회에서 CJ그룹에 대한 검찰조사,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 등 기업 사정과 관련해 “이를 경제민주화와 연관하면 안 된다. 별개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지난해 총선 이후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드라이브에 전경련이 사사건건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선하기까지 하다.
허 회장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기업도 윤리경영, 준법경영 잘하려고 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계속 해왔던 것을 갑자기 고치려고 나서니 다소간의 저항이 생기는 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가 1년 전 전경련 하계 포럼에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기존 법률로도 경제민주화는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공박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내용과 어조는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허 회장은 이날 경제민주화의 취지나 민주화 관련 개별적 법률안에 대해 별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민주화 요구를 ‘재벌 길들이기’로 치부해 온 재계의 관점에서도 벗어났다. 따라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요구를 적어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 컨설턴시(PERC)가 최근 발표한 2013 보고서에서 한국은 아시아 선진국중 최악의 부패국가로 선정됐다. 특히 기업부패는 아시아에서 인도에 이어 두번째로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2위였다. “지난 20년간 한국 10대 재벌 중 6곳이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형기를 마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 경제민주화의 절박한 필요성은 재계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고, 정치권과 정부가 이처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기업, 재계와 정부 간 관계에서 힘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불법·부당행위, 불공정거래, 착취, 비효율 등을 낳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결국 경제주체 간 세력 균형을 확보함으로써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것이다. 법에 허점이 있으면 법개정이나 입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가 법률을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하는 대기업을 처벌하는 시늉만 하고, 대통령이 법을 어긴 기업인을 무더기로 사면·복권해서는 경제민주화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전경련이나 경총 등 경제단체도 재계의 이익이 곧 국민의 이익인 양 엄살만 부릴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국가경제를 위해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