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지나고 나면 창피한 아귀다툼

입력 2013-07-28 18:04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서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느냐는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대목만 보면 NLL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주장할 수도 있다. 때문에 103쪽의 전체 대화록에서 NLL이 다뤄진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0월 3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먼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서울∼개성 철도·도로 개통, 백두산 관광 추진, 황해도 해주∼개성∼인천을 잇는 ‘서해 평화협력지대(특구)’ 설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서해 특구 설치에 난색을 표하면서 문제의 NLL 발언을 꺼냈다. 김 위원장은 북측 군사분계선과 남한의 NLL 사이 수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NLL은 국제법적인 근거도,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지만 (우리가 실효지배하는)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이어 “NLL은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옛날 기본합의의 연장선상에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공동 번영을 위한 바다이용 계획을 세워 민감한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역제안했다. 옛날 기본합의란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로 ‘남북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불가침 구역은 경계선 확정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목에선 노 전 대통령이 NLL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오후 회담에서 서해 특구 설치를 재차 설득하려고 김 위원장이 오전에 요청했던 NLL을 다시 거론했다. 그는 “NLL은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는 게 안보군사지도 위에 평화경제지도를 크게 덮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점심 때 장성들과 논의했는데 해주를 내줄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NLL과 북측 군사분계선을 다 포기하고 경찰이 지역을 맡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고 그걸 갖고 실무협의를 계속 해나가면 내 임기 동안 NLL 문제는 치유된다. 그게 NLL보다 더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평화협력지대를 바다 문제까지 포함해 실무협상에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논의할 문제이고 이런 구상은 발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예, 좋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NLL 문제는 여기까지 언급된 게 전부다.

김 위원장이 ‘과거 포기’를 언급했고 노 전 대통령이 ‘좋다’고 했으므로 NLL을 포기했다는 게 ‘포기설’의 핵심 논거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전제하면서 NLL을 거론했으므로 ‘더 큰 평화구역’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야당의 반박이다. 어쩌면 두 정상도 ‘과거 포기’와 ‘NLL보다 강력한 서해 평화협력지대’라고 서로에게 유리한 대목에 방점을 두고 대화를 마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화록을 읽는 사람들도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주장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대화록만으로는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확정하기 어렵고 녹음기록이나 부속서류를 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그 판정은 역사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과거의 아귀다툼이 아주 창피한 다툼인 경우가 많았다.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