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강요와 부탁의 차이
입력 2013-07-28 18:05
“이모, 나는 원하지 않는데 엄마는 자꾸 엄마의 시선에서 나를 판단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엄마가 원하는 것을 강요해서 화가 나요. 어떻게 하죠?”
며칠 전에 조카가 요즘 엄마와의 관계가 참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조카는 특히 식탁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아침에 바쁘다며 간단하게 먹고 먼저 일어나는 딸과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와의 실랑이가 날마다 반복된다. 엄마는 부탁한다지만, 딸은 강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모녀 간의 팽팽한 긴장을 좀 풀어 주려고 나섰다가 ‘엄마의 강력한 사랑(?)’에 밀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늘 부탁만 할 수는 없다. 부탁을 여러 번 해도 안 될 때는 부득이하게 강요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권위적인 조직이나 수직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지시하는 말투가 버릇이 돼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기대와 어긋날 때 무조건 내 뜻을 받아들이라며 강요해 종종 갈등을 빚는다.
부탁은 내 뜻대로 상대방이 하든 안 하든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반면 내가 제시한 의견을 안 들어주었을 때 화가 나서 상대방을 비난하면 강요라고 보면 된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문제는 이러한 대화가 습관으로 굳어진 사람은 자신이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요당하는 사람은 분노를 느끼고 반발한다.
부탁과 강요는 상황과 심리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어떤 일을 요청할 때 선배는 부탁이라지만, 그 말을 듣는 후배는 강요라고 느낄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 권위 있는 위치에 있거나 과거에 억압당한 경험이 있을 경우 부탁도 강요로 들릴 수 있다. 진정한 부탁은 상대가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 거절의 이유를 공감하고 서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충족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갈등이 생길 때 이를 풀어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자칼식 대화와 기린식 대화다. 자칼식 대화는 옳고 그름, 보상과 처벌에 따라 통제하는 것이다. 즉 판단과 평가, 분석 중심의 소통이다. 기린식 대화는 수용, 조화, 자발성, 창의성, 나눔과 협력 등에 무게를 둔 소통이다. 이 둘 중 어떤 대화법을 쓰느냐에 따라 강요가 되기도 하고 부탁이 되기도 한다. 평소 나는 어떤 식으로 소통해 왔을까. 부탁한 건데 강요로 느낀 사람들은 없었을까.
윤필교(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