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개성공단에 대한 믿음

입력 2013-07-28 17:37


“북한은 바윗덩어리를 껴안고 뒤로 넘어지고 있다.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을까”

군대주둔 vs 중대결심. 북한은 개성을 군무장 지대로 바꾸겠다는 으름장이고, 우리 정부는 공단의 완전 폐쇄까지도 각오하겠다는 대응이다. 양측의 기 싸움이 갈 데까지 가고 있는 중이다.

6차까지 진행된 실무회담에서 양측이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다는 사실이 아쉽기 짝이 없다. 가장 문제가 된 재발방지 조항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북측은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공단의 정상적 가동을 저해하는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과 같은 일방적 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는 안을 제시했고, 북한은 “남측은 공업지구를 겨냥한 불순한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하며 북측은 이상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출입차단, 종업원 철수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는 안을 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또 실무회담에서는 북측이 제기한 ‘개성공업지구 공동위원회’를 남측이 받아들였고, 북측은 남측이 제기한 개성공단 국제화 방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통행·통신·통관 등 이른바 ‘3통 문제’에도 의견을 접근했다.

이 정도라면 양측은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이미 예비회담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재개,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의제를 풀어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단계까지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장관급 회담이나 당국회담에서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다시 실무회담으로 방식을 바꿔봤지만 이마저도 끝내 엉켜들고 있다. 같은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예기치 않는 순간에 비등점까지 달아오르는 남북관계의 불안전성이 문제다.

북한은 유일하게 기대온 중국마저 지난 6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북핵불용납’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나오자 대화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다. 내심 북한은 경제발전과 외국기업의 투자가 절실할 것이다. 수백만의 주민을 아사시키면서 핵이라는 쓸모없는 바윗덩어리를 껴안고 뒤로 나자빠지는 붕괴상황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스로 이를 바꾸지 못한다. 팽팽한 실랑이를 펼치는 국제회담 중에 한 국가의 실무회담 대표가 상대 국가의 기자실에 기습적으로 쳐들어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그들이 미몽에 빠져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다.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의지는 있더라도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국제회담의 상식이나 룰에서 상당히 빗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북한 체제가 그런 혼돈과 군사적 완력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런 상대를 향해 한 곡조 퉁겨줘야 하는 것은 한국정부의 몫이다. 오늘의 우리 정부에는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남북회담에서 너무 세밀한 찰찰함은 오히려 불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걱정을 하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그간 만난 사람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견해를 보인 사람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전도사로 꼽히는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이다. 박 회장은 “분명한 재발방지 보장이 없다면 어떤 기업도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개성공단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업체는 시즌을 놓치면 물건을 시장에 출하할 수 없기 때문에 신원은 개성공단에 있는 원·부자재를 거의 반출하지 않고 고스란히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북한근로자들을 ‘믿음의 형제’로 보살펴온 박 회장은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긴장과 대치를 평화와 협력으로 바꾸는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개성공단이 남북의 앞날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을 거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남과 북이 다시 새겨야 할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8일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추진할 것을 약속하면서 공단 중단 재발방지를 논의하는 회담 개최를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길은 이어져야 한다. 북한은 너무 멀고 추운 나라에 가서 산다.

편집인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