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하나님의 음성듣기

입력 2013-07-28 18:32


피조물이 창조주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신앙을 가진 뒤 내 마음의 불타는 소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육성으로 듣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 귀에 하나님 육성이 울리는 줄 알았다.

이 열정은 고행 어린 노력으로 이어졌는데, 하루는 학교 캠퍼스를 걷다가 내 귀에서 무언가가 울리는 듯했다. 나는 혹시나 하고 마음을 집중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날 하나님 음성을 듣겠다고 금식을 했는지라, 너무 배가 고파 귀에 울리는 ‘배고픔의 이명현상’이었다. 큰 실망이었다. 그런데 한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며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분은 일평생에 단 한번도 육성으로 하나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내게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고백이 나의 눈을 열어주었다.

어느 날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육성으로만 아내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벌써 아내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육성보다 마음의 대화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내와 더 가까울까 아니면 성령님과 더 가까울까?’ 대답은 자명했다. 성령님과 더 가깝다. 아내와 나는 한 몸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서로 분리된 인격이다. 그러나 성령과 나는 한 영으로 연합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관계도 영이 연합될 수는 없다. 한 영으로 완전히 연합되어 있다면 굳이 육성이 필요없다.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말을 할 때 굳이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생각으로 충분하다. 마음의 소리로 충분하다. 성령께서 굳이 육성으로 말을 해야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령 너무 말을 안 듣는다든지, 혹은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관계가 어긋나 있다든지 말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생각속, 깊은 곳에서 울려난다. 나는 이 사실을 훌륭한 영성 신학자 달라스 윌라드의 책에서 확인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부지런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영적 엘리트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만인의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잔다르크’에 보면 프랑스 왕이 말한다. “음성, 음성, 왜 그 음성이 나한테는 오지 않는 거냐? 왕은 네가 아니라 나다.” 그때 잔 다르크는 대답한다. “음성은 왕께도 옵니다. 왕이 듣지 않으실 뿐입니다. 삼종기도 종이 울리면 왕께서는 성호를 긋고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기도하시면, 그리고 타종이 멎은 뒤 공중에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시면 왕께서도 소녀처럼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인생의 첫째 임무는 그 음성을 듣는 것이다. 무더운 휴가철이다. 진정한 쉼이란 그분의 음성 안에 있음을 새겨본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