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왜 저를 이곳에…” 했지만
초교파 사역 이끌어 주셔
이젠 주님의 일 감당하는 보람
2001년 볼리비아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하나님, 왜 저를 이곳에 오게 하셨나요?’ 그도 그럴 것이 볼리비아는 너무 가난했다. 중남미 국가는 대부분 천주교가 국교였고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개신교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60명이 재학 중인 순복음중남미총회 영산신학교와 50여명이 출석하는 볼리비아순복음교회,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도원을 맡게 됐다. 전임자인 최인규 선교사님이 일궈놓은 열매들이었다.
스페인어가 가능한 선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볼리비아 현지 목회자들이었다. 볼리비아는 인근 국가에 비해 목회자들의 교육수준이 낮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 신학 공부를 하지 못한 이 등이 많았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령의 역사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교역자들의 수준이 너무 낮기에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2003년 4월 현지 목회자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이영규 볼티모어순복음교회 목사를 초청해 100여명의 현지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를 준비했다. 그런데 정해진 날짜가 가까워 왔지만 참석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외국인인 우리가 이런 영적 잔치를 준비하고 초청을 하는데 정작 주인공인 현지 사람들이 이렇게 적다니.’ 그런데 마감 날짜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350명의 목회자들이 무더기로 등록했다. 이는 볼리비아 특유의 문화 때문이었다. 날씨가 덥다 보니 제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오전 10시 예배면 11시가 넘어서 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뭐든지 막판이 되어서 일을 하는 특성이 있었다.
인원이 몰리다 보니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3박4일 동안 진행하는 수련회에 3배가 넘는 목회자들이 왔으니 말이다. 음식, 잠자리, 세면장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대형 텐트를 빌리고, 화장실과 샤워 시설 등을 임시로 설치했다. 어떻게 일을 진행했는지 모르지만 감사한 것은 참석한 모든 현지인 교역자들이 많은 도전을 받고 고마워했다. ‘아 이것이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보람이구나.’
행사 마지막 날 현지 하나님의교회 총회장이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호수에 목사님,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일을 진행하실 겁니까?” 호수에는 나의 볼리비아 이름으로 현지어로 여호수아를 뜻한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볼리비아 역사상 이렇게 초교파로 모이는 자리가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많은 목회자들이 모인 것은 목사님이 한국 선교사이니까 어떻게 진행하는지 보기위해 참석을 한 것입니다.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 사역을 진행한다면 목회자들이 참석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동안 볼리비아 목회자들은 서로 연합해 사역을 몇 번 진행해 왔지만 그때마다 많은 문제들이 생겼고 그 후로 초교파 연합사역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 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오기가 생겼다. 현지목회자 세미나 초기부터 각 교단장들을 고문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강사진이나, 그 해 필요한 주제들을 함께 정했다. 제2회 초교파 현지인 목회자 수련회는 목표 인원을 500명으로 늘렸다. 염려로 시작한 2회 세미나에는 목표를 초과해 650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했고, 자리가 더 없어서 기도원 문 앞에서 돌아가는 목회자들도 많았다.
3박4일의 수련회 기간에 25명의 강사진들을 모셨고, 점심시간에는 조별로 나누어 함께 게임과 운동을 하면서 진행을 했다. 저녁에는 성령대망회로 은혜를 나눴다. 주변에서는 볼리비아에서 역사상 그런 행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 사역을 하면서 서로 다른 교단의 교역자들이 모여서 대화들을 나누고 함께 먹고 잠을 자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사역이 다음부터 힘들어질 될 것’이라고 했던 총회장이 나를 찾아왔다. “호수에 목사님 미안합니다. 우리는 이 연합 사역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목사님을 통해 많은 도전과 용기를 받았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볼리비아 현지인교역자들에게 목회자 수련회는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간혹 유명한 강사들이 와서 호텔이나 좋은 세미나 장소를 빌려서 하게 되는데 세미나 참가비가 너무 비싸서 가난한 목회자들은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4일 동안 진행한 세미나는 식비와 숙박비 포함해 한 사람당 3달러만 받았다. 타 지역 목회자들은 이마저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차비의 50%를 지원해 줬다. 예배 때 드려진 헌금은 어려운 사역자들에게 전달했다. 자연스럽게 현지 목회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세미나가 됐고 이 사역이 이제는 볼리비아 기독교협의회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할렐루야!
올해로 초교파 현지인목회자 수련회가 10회째를 맞게 됐다. 이제는 장소가 비좁을 정도다. 매년 참석 목회자만 해도 1000여명이 된다. 인근 페루, 에콰도르, 파라과이, 브라질에서도 목회자들이 참석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역을 준비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이 들어온다.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주력하고 있는 것은 어린이집(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8년 전 설립된 ‘기쁨의 집(LA CASA DE ALEGRIA)’은 주 정부의 인가를 받은 곳이다. 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은 마약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전 세계에서 마약(코카인)을 가장 많이 재배하고 수출하는 나라다.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부모들이 많고, 어린 자녀들은 대부분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며 동냥을 하다가 폭력 등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볼리비아도 천주교 영향으로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 가정마다 아이들이 많다. 반면 버려지는 아이들을 돌볼 기관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어느 날 이런 볼리비아의 상황에 대해 간증했는데 이를 들은 한 독지가가 어린이집 건축을 위한 헌금을 했다. 그 이후 기도원 부지에 고아원을 짓게 됐고 현재까지 이 사역을 하게 됐다. 보통 고아원에 오는 아이들은 10세 전후의 아동들이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을 거친 아이들이 약 50명가량 된다. 부모가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서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외국으로 입양을 가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섬기는 아이들은 20명이다.
이곳에서 세 번째로 중점을 둔 것은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1986년 1년을 볼리비아에서 사역을 한 후 87년 이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사역을 하다가 다시 볼리비아로 발령을 받고 와보니 볼리비아에서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강사료였다. 강사료는 대학교 수준으로 주고 있는데 학생수는 6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전명진 선교사
● 전명진 선교사
-1957년생. 대한신학교, 볼리비아 순복음신학교, UNPI 졸업
-기하성 여의도순복음 소속, 1988년 2월 파송
-볼리비아 한국하나님의성회 법인 설립
-한인 및 현지인 목회자 재교육 사역, 볼리비아 영산신학교, 볼리비아 베데스다대, 고아원 운영, 인디언(과라니족) 새마을운동, 진료소 운영, 라디오 방송국, 굿피플 어린이 사역
[열방우체국-볼리비아 전명진 선교사] 목회자 수련회 통해 얻은 은혜
입력 2013-07-28 17:07 수정 2013-07-28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