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남북 군사적 신뢰 밑바탕 공존의 새질서 찾아야”
입력 2013-07-26 18:07 수정 2013-07-27 01:34
평화체제 전문가 제언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정전(停戰)협정으로 6·25전쟁의 포성은 멎었다. 하지만 60년간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6일 정전협정이 제2의 6·25전쟁을 막았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제는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반도 안전을 위협하는 북핵이 사라지고, 남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체제라고 규정했다.
◇ 불안한 평화를 지켜온 정전체제 명암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지낸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KINSA) 이사장은 “정전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한이 준수할 의지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를 지키려는 남측 의지와 한·미연합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강한 억지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북한은 60년대 군사적 도발, 70년대 학원가 침투 등 간접침투, 80년대 대한항공 폭파 등 테러, 90년대는 핵과 미사일개발로 도발양상을 변화시키며 끊임없이 정전협정을 위반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북한도 정전상태가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고 봤다. 협정 무력화를 시도하면서도 정전체제 와해로 인한 열전(熱戰)에는 자신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정전협정이 있었기에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나 확전을 예방할 수 있었고,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과의 소통도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 교수는 “정전체제는 전쟁의 일시적 중지이지,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며 “60년 정전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남북한의 적대행위를 중단시켰고 한반도 평화관리를 해 왔다는 측면에서 정전체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이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정전체제가 그간 남북관계 안정을 지켜온 틀이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정전체제는 북한 도발과 남북한 충돌이 있었지만 냉전(冷戰)과 탈냉전시대를 거치며 반세기 이상 전면전이 재개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했다”고 밝혔다.
◇ 정전체제를 넘어 새로운 평화체제로
전문가들은 지금은 남북이 정전체제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정전협정에 의한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당사국들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화체제란 한반도 평화구축과 관련된 일련의 규범과 원칙, 규칙, 절차를 총괄하는 것으로 다양한 조약과 협정·선언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교수는 별도 평화협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종이 한 장으로 평화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며 “남북간에 이미 합의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성명, 10·4정상선언을 이행하면 된다”고 했다.
이 전 차관은 “새로운 레짐(체제)을 추구해야 한다”며 “정전협정 체결자인 미·중과 북한, 6·25전쟁 당사자인 남한 등 서면 당사자와 실질적인 당사자 4자가 평화체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정전체제 극복을 위한 평화체제구축을, 북한은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차관은 “평화협정은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마지막단계”라며 “양측의 신뢰가 없는 평화협정은 불안정한 협정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단순한 무력사용 중단을 의미하는 평화체제가 아니라, 상호 군사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공존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평화통일이 돼야만 현재 갈등상황이 청산되고 우리 민족의 저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대화와 신뢰를 쌓아라
이들은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갈등 당사자와 관련자들 사이에 상호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전 차관은 “진정한 대화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나온 포괄적인 합의서다. 이 전 차관은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화체제가 북한에게 이득이 되는 체제이며 핵에 의존해 체제생존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북에 확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신뢰구축의 중요성을 내놨다. 그는 “북한이 한·미동맹에 대해 느끼는 실질적인 위협, 그리고 남한에 의해 흡수 통합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신뢰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이 북한체제와 주민들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남측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더 이상 진전시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원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제사회에 줘야 한다.
김 이사장은 “북한은 도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면서 “도발하면 단호한 응징을 받지만,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기 위해 개혁·개방으로 나선다면 분명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담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신뢰구축을 위해 정부가 대북관계 주도권을 쥐고 북녘 동포의 마음에 호소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유네스코 헌장에도 나와 있지만 전쟁과 평화는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며 “서로 기싸움하고 의심하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남과 북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지지를 보내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추구하는 신뢰프로세스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반도 평화 위한 주변 환경 조성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남북한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중요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평화정착을 위해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미·중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특히 중국은 비핵화를 위해 대북제재와 압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이 평화체제를 합의하고 미·중이 보장하며 일·러가 참여하는 6자 다자안보체제가 뒷받침될 때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아시아판 서울프로세스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가 ‘연미득중(聯美得中)’에 힘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는 견해다. 그는 80년대 말 중국·러시아와의 수교를 목표로 한 북방정책을 추진할 당시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이해를 얻어내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한·미 우호관계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김 이사장은 아시아회귀정책을 택한 미국과 신(新)대국정책을 추진하는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미·중 양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전 차관은 “한반도 문제가 한국화가 아니라 국제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문제가 좌우되지 않도록 주도적으로 주변국을 관리해가는 전략적 구상이 마련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 교수는 “평화체제 구축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주변국 상황일 수 있다”며 “북·미, 북·일관계가 남북관계 진전과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