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애∼ 우리 꿈이 커가요, 매애∼ 믿음도 함께 자라요… 경북 영덕 영해침례교회 ‘염소클럽 아이들’
입력 2013-07-26 17:15 수정 2013-07-26 22:44
동해가 보이는 경북 영덕군 영해면 산 중턱. 백운해(50) 영해침례교회 목사가 23일 나타나자 반대편 언덕에서 “매애∼, 매애∼” 소리가 났다. 염소 무리였다. 낮잠 자던 염소떼가 막 깨 지나가는 목동을 반갑게 부르는 것 같았다. 백 목사도 손을 흔들며 “매애∼, 매애∼”하고 소리쳤다. 뒤로 ‘염소클럽’ 아이들 10여명이 올망졸망 뒤따랐다. 걷는 내내 “매애∼, 매애∼”를 주고받았다.
영해교회 아이들은 특별한 세 가지를 경험하고 있다. 염소 돌보는 일, 도보여행, 솥뚜껑 삼겹살 굽기. 교회 아이들은 2008년부터 염소를 키우고 있다. 또 가까이는 영덕 봉화산, 멀리는 서울까지 걸어서 여행을 한다. 수시로 솥뚜껑에 삼겹살을 노릇노릇 굽는다. 교회에 몰려오는 손님을 대접할 때다. 그 중심에는 ‘목회=놀아주기’라고 보는 백 목사가 있다.
◇3마리로 시작 내년 100마리=영해교회에는 ‘염소클럽’이 있다. 염소를 사서 기르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어떻게 생겼을까? 백 목사는 가축을 길러 아이들 장학금을 주려는 계획을 생각했다. 교인들과 아이들도 흔쾌히 돈이 되고 일도 되는 목축에 동의했다. 2008년 7월 아이들이 명절에 받은 용돈 등을 모았다. 90여만원 정도 됐다. 초등학생, 중고교생 14명이 참가했다. 영해교회는 어른 15명에 청소년 35명이 전부다.
“무엇을 기를지 같이 의논을 했어요. 개나 돼지는 매 끼니를 챙겨줘야 하고 배설물도 치워야 해서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염소는 손이 별로 안 간다고 하더군요. 목초지에 풀어놓기만 하면 알아서 먹고 자니까요. 겨울에 새끼를 낳을 때 너무 춥지만 않으면 잘 살아남고….”
백 목사 얘기다. 영해교회는 염소 3마리를 샀다. 염소는 보통 1년에 한두 차례 2마리씩 새끼를 친다고 한다. 번식력이 좋다. 교회 근처 사는 아이들은 방과후 풀을 먹이러 데리고 다녔다.
이날은 새끼 염소 한 마리가 아침에 우리를 벗어났다. 백 목사와 아이들이 산길을 오르다 마침 이 염소를 만났다. 염소의 앞뒤를 막아 사로잡았다. 새끼 염소를 잡은 박병언(12)군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 때도 있고 재미있을 때도 있어요. 한 목장에서 다른 목장으로 이동할 때 염소가 도망을 잘 가거든요. 한 곳으로 데려가기가 어려워요. 근데 도망간 염소를 뒤쫓아 가 잡으면 또 재미있어요.”
염소가 새끼를 치면서 점점 늘어났다. 아이들이 염소를 키우는 요령도 늘었다. 목초지를 바꿀 때는 뽕나무 가지를 이용한다. 뽕나무는 염소가 가장 좋아하는 잎사귀이다. 뽕나무 가지를 여러 개 꺾어 염소 무리 앞에 둔다. 그러면 한두 마리가 앞장서고 다른 염소들이 뒤따라온다. 그러면 목초지 이동이 비교적 순조롭게 된다. 그동안 이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염소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면 설사를 한다. 특히 아침 이슬이 많이 묻은 풀을 뜯으면 탈이 난다. 가능하면 아침보다는 낮에 풀을 먹인다. 겨울에는 볏단 등 건초나 시금치를 얻어 먹인다.
그런데 염소가 늘면서 풀 먹일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영해교회는 목초지 확보를 위해 주변 땅을 조금씩 매입했다. 목초지를 살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붙였다. 첫 목초지는 밧단아람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어 브니엘, 모리야, 엔게비 …. 야곱이 도망가 부를 이룬 밧단아람처럼 영해교회 땅이 점점 늘어났다. 현재는 5개 목초지만 1만8000여㎡다. 땅은 회의를 거쳐 교회 자산이라는 뜻에서 주로 교인들 명의로 했다. 백 목사는 “염소를 키우면서 뜻하지 않게 주변 땅을 사게 됐어요. 하나님 일하는 방식은 우리 생각을 늘 넘어서는 것 같다”고 했다.
염소는 현재 50마리다. 그중 스무 마리 정도가 임신 중이다. 가을에 무사히 새끼를 치면 90마리가 된다. 내년 봄에 또 새끼를 낳게 되면 100마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영해교회 주일학교에서 성장한 김혜리(28·여) 집사는 “아이들이 동물을 키우는 경험은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 같다. 동물과 교감하면서 저절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덕에서 서울까지 도보여행=백 목사는 10여년 전부터 아이들과 매월 한 차례 걷기를 했다. 인내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인근 278m 봉화산에서 시작했다. 3∼4시간 코스다. 그리고 코스를 늘려 63㎞ 거리의 포항까지 갔다. 세 차례는 330㎞ 넘게 떨어져 있는 서울까지 갔다. 몇 해 전부터는 방학을 이용해 일본 도보여행을 하고 있다. 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서울을 갈 경우는 1인당 30만원 정도 든다. 운전하는 사람이 3명 필요하다. 500m가량 앞서 간다. 아이들이 도착하면 다시 그만큼 간다.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잠은 찜질방이나 교회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이렇게 긴 도보여행 전에는 반드시 사전 훈련을 하고 진행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것이다.
“모래주머리를 달고 걷다가 모래주머니를 떼고 평지를 걸으면 날아갈 것처럼 가볍거든요.”
백 목사는 긴 도보여행 전 15차례 훈련을 하고 그중 10차례 이상 참여한 사람만 도보여행에 참가하도록 하고 있다. 대개 10여명이 도보여행에 최종 참가한다. 백 목사는 도보여행에 반드시 동행한다. 안전을 위해서다. 올해는 겨울방학 때 일본으로 도보여행을 갈 계획이다. 더 큰 꿈도 있다. 언젠가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부 뉴욕까지 걸어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매월 해외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인도의 리틱 싱(9)군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네마타 산포(10)양을 후원한다. 매월 한 차례 1000∼5000원씩 용돈을 거둬 후원금으로 보내고 있다. 모자라는 돈은 염소 판 돈에서 보태기도 한다.
◇삼겹살 솥뚜껑만 6∼7개=목초지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과 함께 교회 마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당에는 지름 70㎝가 넘는 솥뚜껑 두 개가 가스 버너에 걸려 있었다. 상을 차리고 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시키기도 전에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고 왔다. 2인 1조가 돼 버너 앞에 앉았다. 집게를 들고 고기를 솥뚜껑에 올렸다. 노릇노릇 적당히 익힌 뒤 덜어내는 솜씨가 능수능란했다.
“아이들이 고기를 어떻게 저렇게 잘 구워요?” 최루디아(50) 사모가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참 많이 와요. 여럿이 먹기에 좋잖아요. 아이들이 많이 구워봐서 그래요. 100명씩 밥 먹는 것도 예사예요.”
고추, 오이, 상추를 씻고 상을 차리는 것도 아이들이 스스로 했다. 최 사모는 아이들이 고기 굽는 사이 가지무침, 오믈렛, 양파무침을 한 대접씩 뚝딱뚝딱 만들어 내왔다.
“동네에서는 저희 교회가 잔칫집 같다고 해요. 늘 북적북적 손님이 많으니까요. 별일 없이도 교회에 와서 교제하고 식사하고 가는 분들이 많아요.” 백 목사가 전한다.
이날 저녁에도 인근 교회에 다니는 청년과 목사님이 방문해 식사했다. 백 목사나 최 사모, 교회 아이들 모두 낯선 이들과 밥 먹는 게 익숙해 보였다. 이웃 교회에서도 여행객이나 노숙인이 거처를 찾으면 “저 교회로 가보라”며 영해교회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최 사모는 “저희 교회에 가장 부족한 건 식탁이에요. 손님이 오면 합판을 넓게 깔고 밑에 사과상자를 받쳐서 사용하는데 튼튼하지 않아서요”라고 말했다.
올 여름에도 서울 도봉순복음교회, 안양 평촌중앙침례교회, 부산 범일침례교회와 복천침례교회 등 4개 단기선교팀 160여명이 영해교회를 방문할 예정이다. 외부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솥뚜껑이 6∼7개 걸려 있다. 백 목사에게 이렇게 잔칫집 같은 교회를 꾸리는 비결을 물었다.
“글쎄요. 저는 목회를 놀아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과 놀아주고, 청년들과 놀아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재미있게 놀다보면 사람들이 오는 거지요.”
그렇다고 영해교회 교인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백 목사 자녀만도 온유(20)씨, 향유(17)양, 관용(13)군 셋이다. 자녀를 키우고 교회 아이들 돌보기도 벅차다. 그런데 목장 5곳에 염소 50마리를 키우고 도보여행을 기획하고 후원을 한다. “사람들이 가진 것 없이 어떻게 일을 하냐고 하는데 하다보면 다 주시더라고요.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많다, 적다. 돈이 있다, 없다’ 별로 필요없는 이야기 같아요.”
백 목사는 영해교회가 있는 영덕이 고향이다.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큰누나의 손에 이끌려 네 살 때 처음 교회 문턱을 넘었다. 영해고 담임교사는 학적부에 그를 ‘성실하고 정의감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1984년 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 학생회장을 맡았다. 통일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2년 2개월가량 교회를 맡아줄 생각으로 여기에 내려왔다 22년째 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 몇 차례 서울로 부임할 기회가 있었지만 교인들, 교회 아이들이 그를 붙잡았다. 8년전쯤 신학교 진학을 앞둔 한 청년은 “목사님 안 계시면 저는 어떻게 신학교를 다니느냐”며 매달렸다. 주일학교 출신 중에 벌써 2명이 전도사로 사역 중이고 김상우(24)씨가 침례신대에 재학 중이다.
영해교회 주보에는 ‘통일염원 69년’을 주후 연도와 함께 표기하고 있다. 45년 광복이 기점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통일의 꿈을 심어준다. 염소 100마리를 키워 북한에 보내는 꿈, 통일이 되면 원산까지 도보여행하는 꿈이다.
“시골교회는 모판처럼 아이들을 건강하게 기르고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한 지체가 돼 이런 일을 하면 좋겠어요.”
영덕=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