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아침밥을 먹고, 금요일엔 2시간 동안 점심을 즐긴다. 또 한달에 한번은 ‘지각데이’가 있어 평소 출근시간보다 2시간 늦게 회사에 올 수도 있다. 이뿐 아니다. 회사는 ‘이노당’이란 날을 정해 매주 화요일 오후 간식거리를 준다. 날씨 좋은 날엔 전 직원이 오후 3시에 업무를 끝내고 인근 공원이나 유명 맛집으로 ‘게릴라 소풍’을 떠난다. 또 ‘일찍 출근할래요’란 사내 프로그램을 도입해 전사적인 야근 근절운동이 펼쳐지기도 한다.
국내 기업으로는 다소 파격적인 기업문화를 이끄는 이노레드의 직장 풍경이다. 박현우(33) 이노레드 대표는 직원을 ‘VVIP’라 부른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 대표인 그가 직원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어떤 고객보다 이들이 더 소중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원 행복이 회사 수익과 정비례한다고 믿는 박 대표는 40여개 사내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50명 남짓한 직원이 전부인 작은 회사가 사원 복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된 이유는 뭘까.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에서 기업문화 개선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창업 당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CEO가 돼 전 세계 기업인의 건강한 롤모델이 되자’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야 세상에 하나님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제 관점일 뿐이더라고요. 하나님을 닮은 기업의 CEO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얻은 답이 ‘이웃사랑’이었어요. 이 계명처럼 직원과 고객을 뜨겁게 사랑해 ‘함께 일하고 싶은 기업의 CEO’가 되는 것이 이젠 제 비전이자 사명입니다.”
대학 새내기, 가슴 뛰는 일을 찾다
박 대표는 19살 때 사업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형이 창업을 제안한 게 계기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1999년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 인근 건물 지하실에 사무실을 얻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소득은 있었다. 사업이 그의 적성에 잘 맞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외교관을 꿈꾸던 제가 기업인의 길로 들어선 건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됐습니다. 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 내내 가슴이 뛰더라고요. 마치 연애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3개월간 외무고시를 준비할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즐거운 일(사업)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게 낫지 않을까?”
모태신앙인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외교관이 돼 전 세계를 누비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러던 그가 생애 첫 창업 이후 생각을 바꿨다. 기업인이 되면 민간외교관뿐 아니라 선교사 역할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서다.
“그래서 이후에도 창업 시도를 많이 했어요. 20대 초반에 구로공단 근처에서 김밥도 팔았고, 중고 컴퓨터 중개상을 하기도 했지요. 모두 실패했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교훈삼아 더 공부하고 더 많이 경험하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죠.”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그는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을 따고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했다. IT 기업에서의 4년간 실무경험은 그가 인터넷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이러한 경력을 인정받은 박 대표는 대학 4학년 때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경력직 입사 제안을 받았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직원을 뜨겁게 사랑하는 대표
그러나 그는 대기업 입사 9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창업을 위해서였다. 직장 경험 없는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이 구글의 공동창업자가 된 사례는 박 대표의 창업 의지를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박 대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7년 2월 웹 컨설팅 에이전시인 플랜힐을 열었다. 고객 유치와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6개월 후 함께 일하던 한 업체의 자회사 설립 제안을 받아들여 ‘이노버스’를 창업했다.
이후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순탄히 이뤄졌다. 창업 다음해인 2008년 20억원, 2010년 5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각 분야 대기업을 고객사로 유치한 덕분이었다. 창업 때 세운 ‘10년 후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업’이란 비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고객이 늘어날수록 업무 강도가 높아져 회사 핵심 인재가 퇴사 의사를 밝힌 것이다.
“13개월 동안 삼고초려한 인재가 회사를 나가겠다고 했을 때 우리 회사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지 돌아봤지요. 제가 얻은 결론은 ‘성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업한 이유가 기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것이었는데, 이윤 창출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CEO가 되기 위해 회사 비전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모범적 기업문화로 ‘10년 후 한국을 먹어 살릴 기업’으로요.”
‘일보다 사람 먼저’ 경영을 위해 박 대표는 이노버스만의 기업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가 한창 성장하던 2010년 야근 근절운동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기업문화 혁신은 성과 향상과 직원의 변화를 불러왔다. 동종 업계 회사에 비해 이직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새로운 광고 장르도 개발했다. 소셜무비와 실시간 영상합성기술을 활용한 iCF를 개발해 52개국에 광고를 수출했다. 매출 역시 계속 늘어 창업 6년차인 올해 매출 목표인 100억원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족할 만한 기업
현재 삼일교회에 다니고 있는 박 대표는 2년 전 회사 이름을 ‘이노레드’로 바꿨다. 사명에서 ‘레드’는 보혈을 의미한다. 그는 회사의 정체성과 사업 목적을 하나님 뜻에 맞추기 위해 새 출발을 한 만큼 하나님이 세운 회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임한다고 했다.
“저희는 고객에게 술이나 골프 접대를 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이 제게 ‘접대 없인 생존 못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외국계 회사를 비롯한 여러 고객사가 우리의 기업문화를 높게 쳐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고객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더니 하나님께서 길을 내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이노레드가 광고 한류를 이끌며 직원을 사랑하는 새로운 기업 모델이 되길 기대했다.
“2007년 창업했으니 10년차 회사가 되기까지 앞으로 4년 남았습니다. 그동안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회사를 이끌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뜨겁게 사랑한 회사로, CEO로 남고 싶습니다.”
글·양민경 기자,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grieg@kmib.co.kr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까요… 파격적인 기업문화로 주목받는 이노레드 대표 박현우
입력 2013-07-26 17:16 수정 2013-07-26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