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통치행위

입력 2013-07-26 17:27

2003년 3월 공포된 ‘대북송금 특검법’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가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것에 대해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남북 화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속하기 때문에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돈을 준 것은 불법행위라는 논리를 폈다.

대법원은 대북 송금 관련자들에 대해 2004년 3월 유죄를 확정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닌 통치행위에 속하지만 재정경제부 장관 신고도 없이 송금한 부속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였다.

1964년과 79년, 81년에는 비상계엄 선포가 통치행위에 속하는지를 놓고도 논쟁이 일었다. 대법원은 고도의 정치·군사적 성격을 지닌 행위이므로 부당성 여부를 사법부가 아니라 정치기관인 국회만 판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런가 하면 금융실명제와 관련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96년 “통치행위에 속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된 경우에는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치주의가 견고해진 현대에 들어서는 통치행위 자체는 인정하지만 국민 기본권이나 법치원리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범위 등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일반적 흐름이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이 25일 “설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통치행위”라고 발언해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명백한 범죄행위인 기록물 누락을 통치행위라고 하는 것은 혀를 찰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남북정상회담 발언도 아니고 이에 관한 기록을 폐기한 것까지 통치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상 청와대는 대통령 재임 중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할 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기록물의 엄정한 관리를 위해 법을 만든 당사자가 정작 자신의 역사기록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임의로 넣고뺐다면 자가당착이다. 논란이 일자 배 대변인이 “당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고 물러섰다는데 ‘정당의 입’이라 불리는 대변인으로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