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25개월 ‘세계 최강’ 줄다리기 회담… 포로교환 최대 난제
입력 2013-07-26 18:02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6·25전쟁이 막을 내린 1953년 7월 27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길었던 휴전회담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다. 3년여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었던 전쟁 종료와 함께 기나긴 휴전체제의 막을 올린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체결된 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군사적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었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휴전회담=1950년 북한의 남침 도발로 시작된 6·25전쟁이 일진일퇴 공방전 속에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정부는 1951년 3월 참전국 협의를 거쳐 휴전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미국 정부로부터 은밀한 휴전 의사를 전해들은 야코프 말리크 유엔 주재 소련대사가 전격 휴전 제안을 한 뒤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휴전회담이 시작된 것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열린 1차 본회의였다.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은 비무장지대(DMZ) 설치를 위한 군사분계선(MDL) 문제, 정전 이행을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와 사찰·감시기구 설립 문제, 전쟁포로 교환 관련 절차 문제 등을 협상 의제로 삼기로 합의했다.
협상의 핵심쟁점은 군사분계선과 전쟁포로 교환 문제였다. 당시 공산군은 38선을, 유엔군은 ‘현 접촉선(유엔군과 공산군이 대치한 지점)’을 주장했다. 양측은 그해 11월 27일 현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기준을 휴전이 체결된 시점으로 정함에 따라 협상 기간 공방전은 더욱 가열됐다.
특히 전쟁포로 교환 문제는 협상을 장기화시킨 최대 난제였다. 양측은 1952년 4월 28일부터 1953년 6월 6일까지 1년 이상 전쟁포로 교환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이어갔다.
결국 정전협정 체결 후 60일 이내에 포로를 교환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 양측은 그해 7월 19일 158차 본회의에서야 휴전에 최종 합의했다. 휴전회담이 진행된 25개월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긴 기간이다. 이 기간 본회의와는 별도로 500여 차례의 소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정전협정 체결은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이뤄졌다. 유엔군 협상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협상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만났고, 협정문 서명은 12분 만에 끝났다. 이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중공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 각각 협정문에 최종 날인을 했다. 정전협정문은 서문과 전문 5조 63항, 부록 11조 26항으로 이뤄졌다.
◇협상 기간 치열한 고지쟁탈전=양측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군사분계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긋기 위해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특히 351고지, 펀치볼 지역,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저격능선, 백마고지 등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백병전이 벌어졌다.
휴전회담 개시 직후인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강원도 양구에서 벌어진 ‘피의 능선 전투’에선 적군과 아군을 포함해 약 1만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고지 주인이 7번이나 바뀔 정도로 격렬했던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에선 국군 9사단이 고지 확보에 성공해 아군이 철원지역을 계속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13일부터 6일간 강원도 화천에서 벌어진 금성전투는 최후의 공방전이었다. 당시 국군과 중공군의 전사자는 각각 약 1만5000명, 6만6000명(추정치)에 달했다.
◇휴전 끝까지 반대한 이승만정부=북진통일을 외치며 휴전협상을 계속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 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전쟁포로 교환 문제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자 승부수를 던졌다. 남한 지역에 수용돼 있던 전쟁포로 중 전향한 이들을 북측에 넘기지 않겠다며 1953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해 3만5000여명에 달하는 반공포로를 전격 탈출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국제적인 포로 관련 협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이후 북측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미국은 이승만정부에게 추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장기간 경제원조 등을 약속하며 정전협정 체결을 마무리지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