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성공한 전쟁’ 각별한 의미 부여하는 미국

입력 2013-07-26 17:40


미국이 보는 정전 60주년

27일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쏟는 미국의 관심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 관련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해 연설할 뿐 아니라 미국인과 한인 등 7000여명을 초청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의회 리셉션과 세미나도 준비됐다. 인원이나 참석자 면면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 의회가 쏟는 관심과 노력이 각별하다는 평이다.

지난해 5월 27일 워싱턴DC 베트남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 50주년 기념식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당시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해 연설했고 7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반전(反戰) 운동 분위기 등으로 인해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특히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들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베트남 참전 기념식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참전군인들의 표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참전용사 투표자로부터 44%의 지지를 받았다. 베트남전 참전 영웅이었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참전용사들로부터 54%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반해 한국전 정전 60주년 열기는 한국전의 의미에 대한 자각(自覺)이 주요한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참가한 전쟁 중 유일하게 승리했다고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가 이번 정전 행사 구호로 내세우는 ‘잊혀진 승리(forgotten war)’가 이를 대변한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데니스 핼핀 초빙연구원은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미군이 대규모로 파병된 전쟁 중에서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전의 경우 미국이 끝까지 지켜낸 남한이 경제적으로 번성했을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며 “한국전은 유일하게 미군이 해외에서 참전해 성공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간단히 말해 미국은 한국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참석하는 마지막 주요 기념식이 될 것이라는 점도 반영됐다. 미 의회만 봐도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워드 코블(공화·노스캐롤라이나), 샘 존슨(공화·텍사스), 존 코니어스(민주·미시간) 등 4명의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의원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 80대인 이들이 10년 뒤 70주년 기념식에 의원 신분으로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한국전 정전을 기념하는 거의 마지막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높아진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가 미국 외교안보의 최대 현안이 된 미국에게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천명한 가운데 앞으로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여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번 행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정전 60주년을 계기로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시키려던 구상은 한 치도 진전되지 못한 채 기념행사만 부각되고 있다는 비판도 없는 건 아니다. 올해는 오바마 대통령 집권 2기 시작, 중국 시진핑 주석 체제 출범, 박근혜 대통령 집권 등과 맞물려 미국 내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북한이 핵·미사일을 무기로 밀어붙인 한반도 긴장 국면으로 평화협정 체제 구축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쑥 들어갔다.

불안정한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신뢰구축·협력은 물론 북·미 수교 등 북한과 미국 간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이루기 전에는 대화 자체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협상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바마 1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더욱 강고해진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오공단 미 국방연구원(IDA)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충분한 대가만 지불하면 자신들이 개발한 핵 기술과 미사일을 판매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물 건너갔다”며 “요즘 미국 조야에서 북한과의 평화협정 필요성 등을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핼핀 연구원은 “2010년 시진핑 당시 중국 부주석이 중국은 미국의 침략에 맞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등 한국전 원인에 대해 참전국 간에 현격한 시각 차이가 있고 약 500명으로 추산되는 북한 억류 한국군 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