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선박 침몰 여파 궁지 몰린 러드 호주총리

입력 2013-07-25 18:21 수정 2013-07-26 00:50

호주 인근 인도네시아 해상에서 발생한 난민 선박 침몰사건이 어렵게 권력에 복귀한 케빈 러드 총리를 위협하고 있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자바 섬 남쪽 해상에서 23일 스리랑카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200여명이 탑승한 선박이 침몰해 최소 11명이 숨지고 약 190명이 구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침몰한 배는 난민을 태우고 호주 크리스마스 섬으로 향하던 중이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18개월 된 아기 등 어린이 5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난민 사망사고가 와신상담 끝에 총리에 복귀한 러드 총리에게 정치적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드 총리는 사고 발생 이틀 전인 21일 불법 밀입국 난민을 호주에 들여오지 않고 인근 섬나라인 파푸아뉴기니에 정착시키는 방안을 골자로 한 이민정책을 발표했다. 파푸아뉴기니 마누스 섬에는 600명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수용소가 있는데 이를 3000명 규모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호주는 자유당이 집권하던 시절 파푸아뉴기니 등에 일정 경제지원을 해주고 현지에 대규모 난민촌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2007년 러드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이를 대폭 축소했다.

러드 총리의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사회는 반인권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브리즈번과 애들레이드 등에서는 22일 수백명의 시민이 새 난민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난민을 섬나라에 정착시키는 노동당의 정책은 반인도적 인권유린”이라며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기에 마누스 섬에서 수용소 보안책임자로 일했던 관계자가 최근 국영TV에 나와 난민수용소에서 강간과 고문이 빈발하고 있지만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폭로해 러드 총리를 궁지로 몰았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도 총리 비판에 가세했다. 새러 핸슨-영 녹색당 상원의원은 “많은 노동당 지지자가 정부의 새 난민정책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 지지율은 잠시 반등했다가 다시 하락해 37%를 기록했다. 자유당 등 야당연합의 45%에 훨씬 뒤지는 수치로 보수층 표심을 잡기 위해 새 난민정책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것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