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草 증발’ 고발 정국] 강경파에 밀려 출구찾기 실패… 결국 ‘檢’으로 결판
입력 2013-07-26 04:46
새누리당이 25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태에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무현·이명박정부 인사들을 검찰에 전원 고발하는 ‘강수’를 던지면서 정치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검찰 수사로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로 칼날이 향할 수 있어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강(强) 대 강(强) 충돌=새누리당은 당초 ‘사초(史草) 실종’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한 방안으로 민주당에 검찰수사 의뢰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동수호 선언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컴퓨터 도둑이 있다고 치자. 훔쳐간 사람과 합의해 수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사초가 없어진 ‘범죄행위’를 어떻게 여야가 합의한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원내대표는 당내 친이명박계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지적에는 “민주당도 이미 수사하자고 했다. 어떤 세력이든 전 정권이든 다 포함해 수사하면 된다”며 강경론을 펼쳤다. 여야 열람 결과 대화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없고 노무현정부에서 폐기 혹은 삭제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내부적 판단도 검찰 고발을 택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한길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진상은 밝혀야 하지만 예단해선 안 된다. 우리도 이명박정부에 대한 예단과 공격을 절제해 왔다”며 “진상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범법행위라고 예단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특히 문재인 의원과 친노무현계는 ‘일전(一戰) 태세’에 들어갔다. 친노계 핵심인 김태년 의원은 긴급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민주당은 진실을 위해서는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야 한다”며 “진실의 승리를 위해 단결할 때”라고 독려했다.
◇정치력 실종, 돌파구 없나=최 원내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는 전날까지 비공개 접촉을 하며 여야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두 원내대표는 정쟁과 검찰 수사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를 허비할 수 없으니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양당 강경파 주장에 밀려 출구전략을 짜지 못했다. 새누리당의 경우 “불리할 것이 없는데 양보할 필요 없다”, “특검을 수용할 경우 연말까지 정쟁만 이어진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반면 민주당은 “NLL 공동수호 선언은 사실상 패배 선언”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문제는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여야 모두 검찰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데 있다. 또 대선 과정에서 촉발된 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검찰에 칼자루를 쥐어줬다는 측면에서 정치력이 실종됐다는 비판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 고발에 대해) 그동안 신중론을 펴 왔지만 김한길 대표도 수사를 하자고 하니 더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었다”며 “검찰이 정치적인 것을 떠나 사실관계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해도 친노계 또는 친이계가 “정치탄압”이라며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친이계의 반발은 즉각 여권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의원이 검찰에 출두할 경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과거 무리한 수사가 도마에 오르면서 역풍이 불어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 국정조사가 끝나는 시기와 맞물려 여야가 대타협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엄기영 유동근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