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라캉 축으로 되짚는 존재론적 의미
입력 2013-07-25 18:00
헤겔 레스토랑(1권), 라캉 카페(2권)/슬라보예 지젝/새물결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64·사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독일 관념 철학, 여기에 마르크스의 사유 전통을 접목시킨 그는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 같은 존재다. 난해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등 대중문화와 현실 정치를 앞세워 풀어가는 특유의 ‘재담’ 덕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괴짜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번 저서에서 지젝은 ‘그래도 그것은 돈다’로부터 출발해 ‘레스 댄 낫싱(Less Than Nothing)’이란 개념을 만들고 있다. 이는 영문판 제목이기도 하다. 번역자 조형준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연구원이 후기에서 “책의 정체를 오리무중으로 만들 것 같아 제목의 직역을 포기했다”고 할 정도로 개념 정립이 쉽지 않다. 번역자는 대신 이 책이 라캉과 헤겔을 두 축으로 지젝의 모든 것을 담고 있고,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의 ‘철학 카페’를 연상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라고 제목을 붙여 분권했다.
그렇다면 지젝은 1633년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관 앞에서 지동설을 철회한 뒤 읊조린 ‘그래도…돈다’는 말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는 도입부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공백에 도달하려고 분투하는 것이다. 실제로 순수한 없음에 이르려면 이미 무엇인가여야 한다. 이처럼 기묘한 논리를 양자 물리학부터 정신분석에 이르는 이질적인 존재론적 영역에서 찾아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있음과 없음, 존재와 무라는 인과론적 이분법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이 둘 사이에 ‘무(無)’보다 ‘못한’ 어떤 것이 실제로는 모든 존재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5월 발표된 뒤 전 세계에서 처음 번역됐다. 그 정도로 국내에서 그의 인기가 높음을 증명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나가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분량으로 압도한다. 두 권 합쳐 1792쪽이다. 라캉과 헤겔은 물론이거니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으로부터 프로이트를 거쳐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까지 기본적인 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지젝의 전작을 접해본 팬이나 올여름 서양 철학사에 빠져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들이라면 완독의 욕심을 낼 법하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