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상, 이념 걷어 내고 본다
입력 2013-07-25 18:00
폭격/김태우/창비
27일로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이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더 많아졌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념 대립이 컸던 탓에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늘 극단적으로 갈렸고, 전쟁 실상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미 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미국의 공식 기록을 근거로 전쟁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인 김태우 교수는 2000년부터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을 통해 공개된 한국전쟁기 미 공군 문서 10만장을 수집해 분석했다. 당시 폭격 작전에 참여했던 조종사들의 일일임무보고서 등 하급 단위의 생생한 기록이 포함됐다. 여기에 러시아 중국은 물론 남북한 문서와 자료를 교차 분석해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공개됐던 미군의 다른 정보와 달리 공군 관련 정보는 그 정치적 민감성 때문인지 2000년대 들어 공개가 시작됐다”며 “책에 인용된 자료와 사진은 그동안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10년 가까이 진행된 연구의 출발점은 할머니의 기억이다. 그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한국전쟁 당시 가장 무서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할머니가 ‘미군의 공습’을 언급한 영향이 컸다. 미군 공습이 왜 민간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폭격의 실상을 통해 한국전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 공군의 폭격에 대한 당시 남한과 북한 정권의 반응도 적나라하게 담겼다. 1950년 6월 29일 미 극동공군 산하 제3폭격전대의 평양비행장 폭격으로 시작된 북한 지역에 대한 미 공군의 폭격은 북한 지도부를 당혹감과 무력감에 빠뜨렸다. 다음 달 7일 김일성 주석을 만난 북한 주재 소련대사는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김일성은 사방에서 전화해 미 공군의 폭격과 대규모 파괴에 대해 보고한다고 말했다. 김일성이 몹시 화내고 허둥대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적었다. 민간인 공포는 훨씬 컸다. 의도했든 안했든 민간 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피해가 급증했고, 이는 북한 주민들이 미군에 대한 철저한 증오와 반미 의식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미군 폭격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이뤄졌다. 51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 공군의 폭격에 대한 한국민들의 생각을 질문 받는다. 그는 “한국민이 자기 집이 파괴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무서운 일이나 그것을 묵묵히 참고 가옥이 파괴될지언정 적에게 나라를 뺏기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민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미 공군의 민간 지역 폭격이 한국인의 자유를 위한 활동이라는 논리를 정립시켰다.
저자는 50년 11월 미군의 초토화정책 채택 과정과 52년 7월 항공압력전략 구상 과정도 추적한다. 전쟁 초기 군사목표만 정밀 폭격하겠다던 미군의 원칙은 50년 11월 중공군 등장 뒤 연패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정전협정이 시작됐지만 포로 반환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미국은 중국 압박용 공습을 감행했고, 민간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저자는 “미군이 전쟁 초기 정밀폭격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돼야 한다”며 “그러나 국익이 맞물리자 암묵적으로 전방위적 폭격을 방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군은 남한과 북한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적군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되면 폭탄을 퍼부었다. 네이팜탄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으로 세탁되지 않은 공군 조종사들의 임무보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빌리지(village), 시티(city), 피플 인 화이트(people in white)였다”며 “흰 옷을 입은 민간인을 공격했다는 표현들이 무더기로 나왔다”고 말했다.
정치적 배경 외에도 기술적 요인과 미 공군 전폭기 조종사들의 출신 성분 등도 전방위적 폭격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한다. 한국전 조종사들은 노동자나 서민층 출신이 많았고, 이들에겐 이념 요인보다 개인적 출세와 성공이 중요했다.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오폭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종사들은 육감과 자의적 판단에 의지해 표적을 식별해 공격해야 했다. 유능한 비행술과 폭격술에 집중해 기계적이고 기능적으로 임무를 처리했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보다도 자료를 통해 드러난 전쟁의 참상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강력하다. 어떠한 선의를 위한 전쟁도, 민간인 희생을 피할 수 있는 전쟁은 없다.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