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냄새를 기억하는 동안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입력 2013-07-25 17:49


조해진 장편 ‘아무도 보지 못한 숲’

그림형제의 잔혹동화 ‘헨젤과 그레텔’ 이후로 숲은 가난한 계모가 자식들을 버리는 장소로 각인되어 있다. 이 숲은 악의의 숲이다. 소설가 조해진(37·사진)의 세 번째 장편 ‘아무도 보지 못한 숲’(민음사)은 그것을 반전시켜 선의의 숲을 지상에 올려놓는다.

책장을 펼치면 ‘헨젤과 그레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숲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물 냄새가 짙어졌다. 걸음을 멈추었을 때, 미수 앞에는 나무들에 가려 있던 호숫가가 매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를 발견하고 나서야 미수는 오후 4시의 놀이터가 어째서 테두리가 젖어드는 사진 같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12쪽)

대체 숲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줄거리를 살펴보자. 엄마는 사채업자에게 진 빚 때문에 쫓기는 신세였다. 마침 K시 기차역에서 거대한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사채업자는 보상금을 타 내기 위해 여섯 살 현수를 사고의 희생자로 처리한 뒤 데려간다. 현수보다 일곱 살 많은 누나 미수는 동생의 죽음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가난한 외톨이로 살아간다.

현수는 조직의 일을 도우면서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된다. 소년은 이제 성인이 되지만 여전히 세상에 없는 존재다. 그는 어른도, 산 사람도 아니다. 현수는 완벽하게 유령으로 살아간다. 우연히 한 건물에 살게 된 현수는 미수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수의 원룸을 몰래 찾아가 그녀의 삶을 조용히 지켜본다. “708호는 온몸으로 M의 냄새를 풍겼다. 기억회로가 종종 도달하는 그곳. 수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접속할 수 있는 그 장면에 이 냄새를 입력하면 소년은 언제라도 천국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63쪽)

현수는 빈방에서 누나의 냄새와 흔적, 블로그의 글 등을 통해 잊었던 천국, 숲의 이미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미수는 동생의 존재를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한때 현수에게 미수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 때문에 현수가 누나를 부르는 이니셜 M은 미수의 M이자 엄마(mother)의 M이기도 하다. 이 기원을 품고 있다는 것. 이것이 숲에 감춰진 비밀이다. 그래서 기원으로서의 숲에 대한 묘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앉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방바닥에 귀를 대 보았다. 바닥 아래 깊은 곳에 호젓한 호숫가가 보이는 듯했다. M이 자주 발을 담그고 놀았을 고요한 호수는 소년의 얼굴을 맑게 되비췄다.”(135쪽)

이제 현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누나 앞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또 미수는 바로 곁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눈치 채지 못한 동생을 알아볼 것인가. 조해진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이는 바로 우리 옆에 유령처럼 머물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민음사가 새로 선보이는 경장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첫 번째 책.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