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청와대의 이상한 節電
입력 2013-07-25 04:29
청와대는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에너지 절약을 솔선수범하겠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홍보하는 대형 TV를 하루 종일 가동하면서 그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청와대 기자실이 위치한 춘추관 1층 홀에 비치된 TV는 박 대통령과 관련된 온갖 홍보영상을 아침부터 밤까지 재생한다. 내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라는 제목으로 박 대통령 패션을 소개하거나, ‘우리 융합했어요’라며 부처 칸막이 제거로 소속이 다른 부부 공무원이 새 정부 들어 사이가 좋아졌다는 등 대부분이 가십거리다. 출입기자들은 기사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이런 유의 영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력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절전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홍보하는 TV만큼은 가뜩이나 내부 온도가 높은 청와대에서 한껏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 청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한 풍경’은 또 있다. 에어컨을 틀지 않는 수석비서관회의, 국무회의 등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에 긴팔 셔츠, 무겁고 짙은색 재킷을 입고 등장하는 참석자들이다. 박 대통령도 안쓰러웠는지, 직접 쿨피스(쿨+오피스) 복장 착용을 권장하고 심지어 반팔 상의를 입어도 된다고 했지만 ‘감히’ 이 지침을 시도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 회의 시작과 동시에 대통령 앞에서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들이 재킷을 훌러덩 벗는 일은 국민의례만큼이나 정례화된 여름회의 ‘식순’이 됐다.
청와대 한 행정관은 24일 “비 내리고 바람 불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고 했다. 다소 습하기는 해도 키보드 위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보다는 시원해서 그나마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