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자금 은닉에 이용된 ‘무기명채권’ 익명성 보장… 검은돈 세탁 수단 악용

입력 2013-07-24 18:12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범죄수익 은닉 장소로 증권가를 주목하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무기명채권을 통한 비자금 조성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5년간 약 1400억원에 이르는 무기명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나 각종 특수채권의 보유 가능성도 언급된다.

2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시행된 뒤 비자금 관리 수단으로 무기명채권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기명채권은 돈을 요구하는 채권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 이른바 ‘묻지마 채권’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달러가 부족해 거액 자산가들로부터 돈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무기명채권 3종이 발행되기 시작했다”며 “무기명채권으로 이면계약을 하는 경우 중간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무기명채권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에 뇌물이나 비자금 등의 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잦다. 실제로 최근 횡령·배임 및 탈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500억원대의 무기명채권을 두 자녀에게 나눠줬다. 삼성그룹도 무기명채권의 한 종류인 국민주택채권으로 비자금을 조성, 2002년 대선자금으로 전달한 사실이 있다.

CD 역시 금융투자업계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비자금 조성 수단이다. CD는 은행이 정기예금에 양도 가능한 권리까지 부여해 발행하는 무기명 예금증서다. 만기가 30∼90일로 정기예금보다 짧기 때문에 단기간에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2006년 CD 등록발행제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개인 간 무기명 거래가 가능해 ‘검은돈’의 세탁 수법으로 자주 이용됐다. 2003년 큰 이슈였던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규모로 등장한 것도 CD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 만일 기업 자금과 관련돼 있고, 해외를 통한 치부(致富) 가능성이 있다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형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해석이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아들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 관계자들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도 살피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B나 BW는 해외 법인이 투자한 것처럼 돌려뒀다가 유사시 경영진이 자신의 지분으로 내세우며 경영권 방어에 쓸 수도 있다”며 “싼값에 팔았다가 비싸게 되사주는 방식으로 기업 자금을 유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