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웹 이용 여전히 ‘장애’… 불편 신고해도 조사 흐지부지

입력 2013-07-25 05:18


지난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정문 앞에 시각·청각·뇌병변 장애인 15명이 모였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5개 장애인 단체 회원인 이들은 ‘장애인 웹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시각장애 3급 오모(37·여)씨는 “소득공제 등을 위해 국세청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는데 글자가 잘 안보여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방송사와 은행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진정 67건을 인권위에 냈다.

국내 등록 장애인은 250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장애인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려운 ‘웹 접근성’ 후진국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웹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이나 기관을 인권위에 진정해 문제를 해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절차가 복잡하고 조사도 너무 오래 걸려 중도에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장애인의 진정이 접수되면 인권위는 해당 사이트를 조사한 뒤 시정권고를 내린다. 권고가 이행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을 법무부에 통보하고, 법무부는 다시 시정명령을 내린다. 시정명령도 불이행할 경우 3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 6월까지 제기된 정보접근과 의사소통 관련 진정은 731건이다. 그러나 시정권고가 내려진 건 2009년 이후 145건뿐이다. 처벌로 이어진 건 전무하다.

1급 시각장애인 강모(31)씨가 4월 기업 2곳을 상대로 제기한 웹 접근성 진정은 모두 기각됐다. 두 기업이 ‘장애인 웹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인권위에 알리자 사건이 종결됐다. 실제 웹 접근성을 개선했는지 지속적으로 검증·감독하는 절차가 없는 것이다. 또 2010년 9월 방송사 웹사이트에 대해 진정한 시각장애인 이모(41)씨는 2년이 지나서야 시정권고를 내렸다는 결과를 받았다.

진정이 기각되거나 시정권고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해당 장애인이 인권위에 ‘재진정’을 해야 한다.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문형남 교수는 “현 시스템은 피해자인 장애인이 스스로 불편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며 “사후감독과 처벌을 강화해 허울뿐인 법을 제대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