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 개척 나선 임채원씨 부자 “길이 보이기에 F1 도전 포기못해”
입력 2013-07-25 04:38
“모터스포츠는 3바퀴가 잘 맞아야합니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고요. 노력(훈련)이 가속도를 내게 한다면 경험은 재능과 노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바퀴를 잘 굴려 한국인 첫 F1(포뮬러1) 드라이버의 꿈을 반드시 이룰 겁니다.”
서울대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유럽 모터스포츠의 본고장인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러피언 포뮬러3(F3)에서 우승을 차지한 임채원(29·에밀리오데빌로타팀). 24일 새벽에 금의환향한 그를 이날 오후 서울 상암동 자택에서 만났다.
◇한국인 첫 F3 우승=신장 1m73, 체중 67㎏. 폭풍질주를 이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문제는 대부분 현역 선수들보다 나이가 10년 정도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드라이버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늦깎이 챔피언이 된 임채원의 첫 마디는 “경험은 곧 비용이지만 도전을 멈출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경험이라는 뜻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달랐다.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비용이 그만큼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결국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우승할 수밖에 없단다.
임채원은 지난 13일 열린 2013 유러피언 F3 오픈 코파(F308) 클래스 9라운드에서 5.901㎞짜리 서킷 15바퀴(총 88.515㎞)를 30분18초735 만에 돌파해 첫 정상에 올랐다. 2007년 독일 F3대회에서 네덜란드 입양아 출신 최명길(네덜란드·리카르도 브루인스 최)이 우승한 적이 있지만 한국 국적 선수가 F3에서 우승하기는 임채원이 처음이다. 임채원은 이튿날 같은 곳에서 열린 10라운드에서 임채원은 30분21초868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했다. 유러피언 F3의 전체 16라운드 중 10라운드를 마친 임채원은 일시 귀국해 휴식을 취한 뒤 8월말 다시 스페인으로 출국, 하반기 대회를 준비할 예정이다. 임채원이 출전하는 유러피언 F3는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스페인,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 7개 나라에서 16차례 경주를 펼친다. 중간순위 5위에 올라있는 임채원의 목표는 3위지만 남은 대회 결과에 따라 시즌 종합 우승도 가능하다.
◇父子는 용감했다=임채원이 우승하기까지 5년 동안 들어간 비용은 무려 16억원에 달한다. 기약도 없는 ‘무모한 도전’을 뒷바라지 한 이는 바로 올해 환갑을 맞은 부친 임수근씨다. 인천에서 소규모 회사 ㈜구영에스피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고독한 레이스에 든든한 동반자가 됐다.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인 아들의 진로를 바꿔 공부에 몰입하도록 했던 아버지가 1년에 수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모터스포츠를 허락한 배경을 들어보면 참 기가 막힌다. 취미활동으로 모터스포츠를 하겠다는 아들의 진의(?)를 잘못 파악한 결과다.
1명의 선수를 양성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100억원 정도다. F3은 수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스폰서가 없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 길을 임채원 부자는 함께 달려가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유러피언 F3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 무척이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 남은 6라운드 경기에 참여하려면 최소 2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달 중 4일간 합동 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3600만원부터 마련해야한다.
사실 임수근씨는 아들한테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스폰서 역할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지만 내년에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아버지의 솔직한 고백이다.
◇한국인 첫 F1 드라이버 꿈이 아니다=하지만 아들의 생각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국내 유일한 F3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 11월에 열릴 예정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다음 ‘60주년 마카오그랑프리에 출전하는 게 꿈이다. F3 경험을 바탕으로 머잖아 F1으로 직행하겠다는 것이 임채원의 원대한 꿈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드라이버메이커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달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훗날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야 합니다. 장애물은 물러서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뛰어넘으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게 삶이고 인생 아니겠습니까.”
임채원은 2010년 국내 카레이싱 대회 CJ슈퍼레이스를 통해 데뷔했다. 첫해 입문 클래스 우승을 거둔 임채원은 2011년 일본 슈퍼-포뮬러주니어(1500㏄) 우승과 2012년 일본의 F4(3위입상), FCJ(포뮬러 챌린지 저팬), 아시아 포뮬러 르노등에 출전해 세계적인 드라이버들과 경쟁해 오다가 올해 유럽의 정통 포뮬러 레이스에 뛰어들어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