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힘’…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 출간 ‘프리미어 낭독회’ 예약 구매자 1000여명 몰려

입력 2013-07-24 17:37 수정 2013-07-24 23:43


소설가 김영하(45)가 24일 신작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사진) 출간에 맞춰 서울 상도동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프리미어 낭독회’를 열었다. 이날 낭독회엔 지난 10∼18일 온라인 서점 예약 판매 당시 신청을 받은 1000여 명의 독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신간 출간 후 열리는 ‘독자와의 만남’은 대개 50∼100명 내외의 규모로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나 이날 낭독회는 책을 예약구매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데도 불구, 1200석 규모의 기념관이 꽉 들어찼을 정도로 대규모 행사였다. 김영하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가수 이적의 사회로 진행된 낭독회에서는 밴드 MOT의 보컬이자 비디오아티스트 이이언이 직접 제작한 ‘살인자의 기억법’ 북트레일러도 상영됐다. 대체 김영하 소설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독자들이 이렇게 운집할까.

“실수였다. 시를 가르치는 문화센터의 강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웃겼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8쪽)

알츠하이머에 걸린 70세 노인, 그러나 실은 30년 동안 살인을 저질러오다 25년 전 살인행각을 그만 둔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새로 나타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는 줄거리의 소설엔 피가 튀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예상을 여지없이 빗나가게 하는 마지막 결말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예컨대 이런 문장. “나는 시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살인의 과정을 정직하게 썼다. 첫 시의 제목이 ‘칼과 뼈’였던가?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중략)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11쪽)라든지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35쪽)가 그것.

김영하가 하필 연쇄살인범을 내세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는 집필 기간 중 작성한 ‘메이킹 노트’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소설을 왜 쓰느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대답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 요즘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답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문학, 특히 소설은 기억의 예술이다. 누군가의 유명한 말마따나 소설은 황혼에 쓰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소설가들이 기억의 문제와 씨름했다는 것, 소설의 바로 그런 부분에 내가 언제나 매료된 것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나’가 일지 형식으로 쓴 짧은 글들로 점철되어 있다. 게다가 화자의 목소리 이외에는 소설의 정황에 대한 다른 정보가 없다. 문제는 화자의 기억이 점점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앞서 벌어졌던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심지어 이런 일지도 있다. “내 생애 마지막 할 일이 정해졌다. 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70쪽) 그래서 이 소설은 기억의 소실에 대한 비망록이자 망각에 저항하는 서글픈 농담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