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근혜노믹스 롱런하려면

입력 2013-07-24 17:34


노믹스(nomics). 이코노믹스(economics)에서 나온 이 말은 최고 권력자나 정책수반 이름에 따라붙는 접미사다.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지출과 규제, 세금을 대폭 줄이고 기업자율에 맡기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가 효시다. 한국에선 김대중 대통령의 이니셜을 붙인 DJ노믹스가 첫선을 보였다. 노믹스는 경제위기 때 많이 등장한다. 레이거노믹스는 중동의 석유위기, DJ노믹스는 1997년 외환위기와 관련이 있다.

정권초기만 반짝하는 노믹스

노믹스 대부분은 정권 초기 반짝하다 사라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의 MB노믹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빛이 바랜 것이 한 예다.

노믹스는 선거 때 포퓰리즘 색채가 강할수록 시들해지기 십상이다. 반대 세력의 저항이 거세 정책이 먹혀들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재정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내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노믹스는 하원을 장악한 야당의 재정지출 반대 공작 때문에 스러졌다. 9%대라는 사상 최대 실업률이 7.6%로 떨어지기까지 4년이 걸렸다. 오죽하면 오바마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을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어떤가. 대규모 채권매입과 엔저를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는 아베 총리 ‘무데뽀(無鐵砲)’의 소산이다. 21일 참의원 선거 압승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 직후 교도통신 여론조사 결과 아베 지지율은 6월의 68%에서 56.2%로 급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31.7%)는 응답자 가운데 ‘경제 정책에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응답이 29.6%로 가장 많았다. 여기엔 아베노믹스가 민생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데 따른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의 리커노믹스는 아베노믹스와 딴판으로 경기부양이 아닌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 하강곡선을 그리는 다른 나라들은 아우성이다. 세계 경제의 버팀목인 중국의 구조개혁은 경기 하강을 더욱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국들은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중국이 성장률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조치에 나설 것을 권고했지만 우지웨이 중국 재정부장은 그럴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도 지난 20일 “경제체중만 불려서는 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며 리 총리 정책을 재확인했다. 중국으로선 그동안 서방국들이 섀도 뱅킹과 부동산 거품 제거를 줄기차게 요구해 놓고 이제 와서 앓는 소리를 하느냐는 항변으로 해석될 만하다. 리커노믹스는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제 갈 길 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면에서 아베의 배짱과 비슷하지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근혜노믹스 체질 개선이 우선

근혜노믹스를 이끌고 있는 경제수장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G20 회의에서 양적완화 출구전략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제 공조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국제회의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며 자화자찬이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그의 갑작스런 역할론과 존재감 과시가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다. 우리경제가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이라는 거센 외풍에 취약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닐는지.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국제위상 과시보다는 경제체질 개선이다. 경제민주화를 공격하는 재벌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서둘러 경기 부양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무소신부터 점검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신임을 받은 참에 이제부터는 당장 욕을 먹더라도 리커창식 소신을 배워보는 것이 롱런의 지름길일지 모른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