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2013년 짜증공화국

입력 2013-07-24 17:52

사방이 눅눅하다.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장대비에는 우산을 펴도 별수 없이 흠뻑 젖는다. 비가 잠깐 그친 후엔 낮게 깔린 비구름 밑으로 점령군처럼 습기가 밀려온다. 장마전선은 지금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한반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쓰고 각각 ‘메이위’, ‘바이우’로 말한다. 매우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모양이나 ‘매실(梅實)이 노랗게 익어가는 때 내리는 비’란 주장이 우세한 듯하다. 이름엔 계절을 풍미하는 맛이 담겼는데 현실은 그저 우울할 뿐이다.

기상청은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된 올 장마가 이달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33년 만에 가장 긴 장마가 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눅눅함과 습기 많은 무더위의 기묘한 조합이 우리 모두를 옥죄고 있지만 좀더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우리를 더 처지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며칠 전 회사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폭우에 떼밀리듯 택시를 잡아탔다. “여의도 사람들은 정말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며 택시기사가 바로 말을 걸어온다. 장마철인데 어딘들 안 그러겠냐고 했더니 그럴싸한 논평이 이어진다.

“요즘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인공들의 답답한 행보 때문에 전국에서 지탄과 불만이 그들을 향해 보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울분이 다 어디로 가겠나. 여의도 상공을 맴돌다 빗줄기를 타고 밑으로 가라앉게 되면 여의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얹혀지지 않겠나.”

NLL(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대화록에 관한 얘기였다. 국민의 지탄이 엉뚱하게 여의도 사람들에게 쏟아진다는 것은 그의 농이겠으나 틀린 말도 아니다. 장마보다 더 지루하게 정치권이 온통 NLL 관련 논쟁만 해대는 모습이니 말이다. 당초 여야의 쟁점은 국정원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이었으니 이 문제만 확실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국정원의 월권적인 대화록 공개 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화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의사 밝힌 것 아니다’는 응답이 55%로 절반 이상이다. ‘밝힌 것’이란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다른 여론기관의 조사결과도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몇 개월째 NLL 타령이다.

그들의 NLL은 실은 ‘한도 끝도 없이 정쟁만 추구하는 그들만의 리그(NLL·No Limit League)’에 불과하다. 정말이지 2013년 짜증공화국에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보내고 싶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