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고유환] 정전 60돌을 맞으며
입력 2013-07-24 17:54 수정 2013-07-24 19:46
“더 복잡해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 북한이 진정성 있는 행동 보여야”
정전협정 60주년을 맞는 올해의 한반도 정세는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위기국면으로 치닫기도 했다. 지난 3, 4월은 정전 질서의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문제 삼으며 미국에 전면 대결전을, 남한을 향해서는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말 폭탄’을 쏟아 부었다. 3차 핵실험으로 핵능력 향상을 과시한 뒤에는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가침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5월부터 국면전환을 시도하면서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전협정에 기초한 불안정한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올들어 북한이 위기를 고조시킨 것은 정전 질서의 불안정성을 부각해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를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김일성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에 따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1955년 8월부터 74년 2월 까지만 해도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군 철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북한은 미군 철수를 한반도 공산화 통일의 ‘중심고리’로 인식했다. 남북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남한이 수용하지 않자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하고 평화협정 당사자를 미국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 북한은 북·미회담에 남한도 참가하는 3자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90년대 북한은 새로운 평화보장체제 수립을 제안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불가침 합의를 이뤘기 때문에 북·미 평화협정을 맺으면 한반도에 평화보장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어려우면 과도적 조치로 ‘잠정협정’이라도 맺자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 제안들을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위한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미국은 남북 평화협정을 지지한다.
냉전시대 한국은 ‘평화협정 체결은 곧 미군 철수’라는 등식 아래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영삼정부 시기 4자회담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 노력을 시작으로, 김대중정부 시기 북·미 공동 코뮈니케에서의 4자회담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 재확인, 노무현정부 시기 6자회담의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및 10·4 선언에서의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추진 합의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때 ‘비핵’을 첫 자리에 둔 대북압박과 6자회담 중단 등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특히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연이은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평화보다 안보를 우선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핵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핵문제와 연관해서 풀 수밖에 없다.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 노력을 어떻게 다시 연결해 수순을 정할 것인지가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새로운 협상은 정전협정 관련국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신뢰의 첫 걸음은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3차 핵실험 이후 한국은 6자회담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협상 틀을 마련할 것인지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맞춰 한국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이 전작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으로의 전작권 전환은 북한이 한국을 평화협정의 주된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