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부 휴양도시 ‘다바오’] 온통 에메랄드빛… 어디가 바다이고 하늘인가

입력 2013-07-24 19:03 수정 2013-07-25 10:43

태평양을 캔버스 삼아 햇살의 물감을 뿌린다. 아포산이 장대한 기골을 드러내면 수평선 너머 적도까지 뻗은 바다를 에메랄드빛으로 채색한다. 만선기를 세운 고깃배처럼 야자나무를 가득 실은 섬들로 바다 위를 점찍고 산호초 주변에서 먹이를 찾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로 바다 속을 덧칠한다. 나비의 날갯짓과 닮은 난초의 여왕 왈링왈링의 은은한 향이 흩날리면 필리핀 남부 휴양도시 다바오에서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필리핀 최남단 민다나오섬의 주도(主都) 다바오는 화려하고 열정적인 도시다. 세부나 보라카이만큼 여행객들의 발길이 분주하지는 않지만 깨끗한 바다와 비옥한 산이 조화롭게 이뤄진 자연환경과 다양한 부족의 혼합문화, 풍부한 농수산물로 관광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인구 140만명으로 수도 마닐라에 이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2003년 다바오공항 폭탄테러 등 한때 횡행한 무슬림 반군의 공격으로 저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지방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마닐라보다 안전한 도시로 재조명되고 있다. 10년 전부터 ‘담배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고 도시 대부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시장의 확고한 철학도 청정지역을 찾는 여행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도심 선착장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사말 섬은 다바오의 낭만을 여는 관문이다. 태양과 바다의 매력에 심취했다면 사말 섬의 백사장을 10분만 거닐어도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섬 서쪽 해변으로 늘어선 리조트에서는 스노클링과 다이빙, 윈드서핑, 제트스키, 카약, 낚시 등 해상레저가 가능하다. 한나절 동안 쾌속정을 타고 호핑투어를 하며 발견하는 작은 섬과 해변은 사말 섬에 숨겨진 보물들이다.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에메랄드빛을 거쳐 검정 잉크처럼 짙어지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나서 해변가 해먹에 누워 오수를 즐기면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펼쳐진다.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리조트 종업원이 밤 인사를 건네는 순간 풀벌레의 지저귐만 남은 이 섬에 고요한 평온이 찾아온다. 남쪽에 적도를 둔 밤하늘은 하루의 마지막 여흥을 즐기기 위해 리조트 수영장에 몸을 가지런히 띄운 여행객의 노곤한 심신을 어루만진다.

다바오 내륙 도심의 풍경은 사말 섬과 사뭇 다르다. 활기가 넘치고 화려하다. 여름에도 오후 6시 이전부터 식당과 카페, 클럽, 피아노바, 뮤직라운지의 불빛이 도심 거리를 밝힌다. 시차상으로 한국보다 한 시간 앞서지만 인천과 같은 시간변경선(경도 동경 125도)에 위치한 다바오의 저녁은 한국인에게 조금 빠르게 찾아온다. 저녁식사는 농수산물이 풍부한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이곳 사람들의 인사 “만카온타”는 “함께 식사를 하자”는 뜻이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음 날 식사를 약속하는 모습은 드물지 않은 식당의 풍경이다.

다바오의 식탁을 가장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주요 수산물인 참치다. 참치의 턱을 구운 ‘이니하우 나 팡아’와 꼬리를 굽거나 찐 ‘크리스피 분톳 응 바릴레스’, 알을 활용한 ‘이니하우 나 비호드’, 회 샐러드인 ‘키닐라우’는 한국인에게 낯설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별미다.

단맛이 강한 다바오의 열대과일은 무더위에 지친 여행객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망고스틴과 포메로, 람부탄은 물론 한국인에게 익숙한 파인애플과 바나나 등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시내 한복판 마르코폴로호텔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상점에서 구입한 과일을 먹으며 거리를 걷거나 노천카페에서 크림이 풍부한 두리안커피를 마시면 도심 그늘 속 깊숙하게 감춰진 여행의 소박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열대과일을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카다야완 축제가 열리는 8월이다.



다바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마는 모험이다. 필리핀 최고봉인 아포산(2954m)의 등산길인 타마용 트레일을 타고 오르면 숲과 골짜기, 폭포를 품은 웅장한 산맥이 펼쳐진다. 10월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쯤 이동한 거리에는 마리로그 지역의 색다른 모험이 기다린다. 바가니한 동굴과 에폴 폭포, 시걸마운틴 리조트에서 신비한 자연경관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인기 있는 모험은 물살이 센 다바오강을 건너는 뗏목 래프팅이다. 타무간 바랑가이에서 칼리난의 락손 바랑가이까지 3시간 동안 이동하는 코스다.

크로커다일 파크는 악어 본거지인 이곳을 대표하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5.7m의 대형 악어와 초대형 뱀, 벵골호랑이, 게코도마뱀 등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는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생기 넘치는 악어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필리핀의 국조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인 필리핀독수리가 서식하는 독수리보호센터와 다양한 난초와 꽃의 향이 진동하는 말라고스 동산도 여행객에게 야생의 기운을 선사한다.

다바오는 최근 우기(雨期)가 지나갔다. 적도에 인접(위도 북위 6도)하지만 연평균 20∼32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기후는 안정적이다. 대개 7∼8월 중에는 남국의 청명한 하늘과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다바오(필리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