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축첩·조혼금지부터 물산장려 애국계몽운동까지…
입력 2013-07-24 17:21
여성운동의 산실 한국YWCA
1960년 어느 봄날, 한복을 입은 여성 2000여명이 명동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네모난 나무판자로 만든 플래카드를 하나씩 손에 쥐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첩 둔 남편 나라 망친다!” “아내 밟는 자 나라 밟는다!” “축첩자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회원들이었다. 국회의원 가운데 첩을 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접한 YWCA가 집회를 열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축첩자 낙선운동’으로까지 이어진 활동은 당시 사회 이슈와 국회의원 선거를 연계했다는 점에서 한국여성운동사(史)의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여성운동의 산실 한국YWCA가 걸어온 발자취는 곧고 뚜렷하다. 지난해 4월 열린 창립 90주년 기념식에서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은 “격변의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는 모범생, 우등생 같은 단체”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2년 4월,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등 3명의 여성 선각자들이 의기투합해 YWCA를 창설했다. YWCA는 설립 초기부터 사회문제부 등을 설치해 애국계몽 및 여성인권운동 등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인 이태영을 사회문제부 위원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YWCA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축첩·조혼·공창 폐지와 금주·금연운동 등이 꼽힌다. 물산장려운동 등 애국계몽운동 또한 병행했는데, YWCA의 대표적인 농촌계몽운동가였던 최용신(1909∼1935)이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으로 다뤄질 정도로 당시 활동은 활발했다.
53년부터 이어져온 한국YWCA의 가족법 개정운동도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동성동본 불혼제도 폐지, 부모의 친권 공동행사, 상소제도 합리화, 이혼 및 사별 여성의 재혼금지 조항 폐지 등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 왔다. 그리고 2005년 국회를 통과한 호주제 폐지는 반세기 만에 이뤄낸 여성운동의 쾌거였다.
한국YWCA연합회(회장 차경애)는 현재 전국 52개 회원 YWCA와 250개 전문센터, 9만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