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봉남 (10)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35년만에 聖畵로

입력 2013-07-24 17:11 수정 2013-07-24 15:45

세상에 알려진 기독교 화가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지오토, 프란체스카, 그뤼네발트, 티치아노, 루오, 렘브란트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성화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다.

하지만 렘브란트도 성서 내용 중 창세기 등 구약의 앞부분만 그렸다. 더욱이 그는 성화 그리는 것을 중도에 포기했다. 성화만 그려서는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화만 그리는 화가는 역사적으로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성경 말씀 전체를 모두 그린 화가는 없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못한 그 일을 보잘것없는 내가 도전하고 있다니…. 나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었다.

성화를 그리는 많은 화가들은 성서 속의 등장인물과 비슷한 모델을 선정해 작업을 했다. 성서 인물들을 초상화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1000년 전이나 현재나 미래 1000년 후의 사람이 봐도 같은 감흥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대를 초월하는 성서의 인물과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종교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 신앙심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성화를 그릴 때 그 대상의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서구인의 사실적인 얼굴이 아닌, 동양인의 얼굴로 바꾸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예수님의 심정, 그때그때의 마음을 반(半) 추상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30대 초반부터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왜 작품을 발표하지 않느냐는 말을 주위에서 여러 번 듣곤 했다. 작품이 마무리되면 구입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 발표를 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작품의 구성과 내용이 연속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만약 전시회 등을 해 작품이 부분적으로 팔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20년 만인 1995년 나는 전시회를 가졌다.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책무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신약성서 중에 예수님의 일생만 추려 작품을 발표했다. 그런데 예상대로 염려한 일이 생겼다. 몇몇 작품이 팔리면서 마치 중간에 이가 빠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신약의 내용을 그릴 때는 예수님의 공생애 과정을 한 폭 한 폭 나눠 그렸다. 구약은 등장인물들이 방대했다. 때문에 주요 인물 위주로 작업을 하면서 주요 사건의 줄거리를 한 폭의 그림 속에 그려냈다.

성화의 재료는 1000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는 유화로 제작했다. 구약 창세기부터 그리기 시작해 신약의 끝부분 요한계시록까지 지난해 작품을 완성하니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삶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찾은 것은 예수님을 만나 ‘기독교미술’이라는 사명감으로 창작생활을 할 때였다. 돌이켜 보면 그림은 ‘정신의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사명감으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기쁨이 충만했다. 주께서 값없이 사랑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더욱 실감나게 그렸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역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미술이라는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은 만국 공통의 언어다. 글을 모르는 문맹자, 또한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평범한 나를 택해 그림을 그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고난은 꿈을 이룬 과정이었다고 간증하고 싶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