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3父子 사실상 수사 착수… 檢, 20년간 금융 거래내역 추적

입력 2013-07-24 01:09

[쿠키 사회]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두 아들의 최근 20년간 금융거래 정보를 모두 제출하라고 증권사들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발부된 압수수색영장을 각 증권사에 제시했다. 법원이 무려 20년에 걸친 계좌추적영장을 발부한 건 검찰이 범죄 혐의를 상당 부분 소명했다는 의미여서 추징금 환수 작업이 사실상 범죄 수사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서울중앙지검의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구서’와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전 전 대통령, 장남 재국씨(시공사 대표), 차남 재용씨(비엘에셋 대표)의 최근 20년간 입출금 거래 내역을 제공해 달라고 지난 8일 증권사들에 요구했다. 검찰은 증권사들에 이들의 고객기본정보서(CIF)와 함께 대여금고 가입 내역, 현재 대여금고 현황 일체를 제출토록 했다. 요구서에 별첨한 문서에는 이들 셋을 ‘피의자’로 명시하고 직업·주거지 등 인적사항을 제공했다.

검찰은 금융거래 정보 제공 사실을 전 전 대통령 측에 6개월간 통보하지 말도록 증권사들에 요구했다. 검찰은 “명의인에 대한 거래정보 제공 사실 통보가 증거인멸 등 공정한 사법절차의 진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통보유예 요구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회신 시 반드시 ‘추적상대계좌정보’를 기재하고, 긴급한 사안이기 때문에 빠른 처리를 부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증권사들에 1993년 1월 1일부터 지난 3일까지 20년6개월의 기간에 해당하는 금융계좌 추적용 압수수색영장을 함께 보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근거,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죄명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며 10월 4일까지의 유효기간으로 영장을 발부했다.

전재국 ‘연천 허브빌리지’ 차명 구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2004년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 부지를 매입할 당시 시공사 직원을 내세워 차명 계약을 맺은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부지 일부는 대금 지급까지 완료하고도 1년 가까이 등기를 하지 않은 채 몰래 보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국씨는 2004년 2월 김모(88)씨와 경기도 연천군 북삼리 221번지 땅 1만2873㎡를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 명의자는 재국씨가 아닌 시공사 직원 장모(55)씨였다. 장씨는 계약 후 지분이전 등기까지 접수했다가 “등기에 착오가 발견됐다”며 돌연 소유권경정 등기를 냈고, 재국씨는 1년 뒤인 2005년 4월 소유권을 본인 명의로 이전했다.

주변 땅도 장씨를 통해 차명 계약됐다. 장씨는 2004년 3월 11일 조각가 이모씨에게서 연천군 북삼리 222, 223, 225번지 땅 1만1616㎡와 건물 2채를 매입했다고 등기했다. 그는 이후 가등기까지 접수했다가 두 달 후 등기를 말소했다. 그 무렵 재국씨는 해당 부지와 건물 소유권을 부인과 딸 명의로 바꿨다.

땅 주인 이씨는 “재국씨 측이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바로 땅을 사면 주변에서 말이 나온다’며 직원을 내세워 가등기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까지 다 받았는데 1년쯤 후 재국씨 측이 다시 찾아와 등기 절차를 밟자고 했다”며 “해당 지역이 토지개발지역으로 묶인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명의를 돌려놓으려 했던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도 직원들이 나와서 재국씨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땅값 18억원가량은 모두 1억원짜리와 1000만원짜리 수표로 지급됐다고 한다.

당시 연천 땅 거래는 모두 재국씨 측 미술품 구매 대행자 중 한 명인 큐레이터 한모씨와 파주시 부동산업자 오모씨의 주관 아래 이뤄졌다고 한다. 2003~2004년은 차남 재용씨가 167억원 괴자금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때다. 재국씨는 그해 7월 조세회피 지역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블루 아도니스’를 세우고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 재국씨는 검찰 수사가 잠잠해진 이듬해 연천 땅 8753㎡를 부인 명의로, 2007년에는 5921㎡를 본인 명의로 사들였다.

임진강 인근에 자리잡은 허브빌리지는 일대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재국씨가 부지 매입을 시작할 때인 2003~2004년 북삼리 221번지 공시지가는 ㎡당 892~1140원이었다. 그러나 대지로 형질이 변경되고 토지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현재 공시지가는 ㎡당 11만원으로 100배가 뛰었다.

검찰은 허브빌리지 땅 매입 자금의 원천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땅 매입 자금이 전 전 대통령 은닉 재산에서 유래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 땅값 상승으로 늘어난 부분까지 환수가 가능해 수백억원을 추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全씨 일가 증권거래 전방위 추적… 비자금 뿌리 찾았나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부자 3명에 대해 20년에 걸친 광범위한 계좌추적에 착수한 것은 비자금 은닉과 불법 자금거래의 구체적 범죄 혐의를 포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이 설정한 금융거래 내역 추적 기간은 1993년부터 최근까지로, 93년 제정된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확인 가능한 모든 금융 거래를 들여다보고 이들의 자금이 제3자에게 흘러들어간 정황까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93년은 전 전 대통령이 내란·뇌물죄로 검찰 수사를 받은 95년보다 2년이나 앞선 시점이다.

23일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증권가에 범죄 수익을 숨긴 정황은 이미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대출·연결·가상계좌를 포함한 입출금 거래 내역, 대여금고 현황, 추적대상 계좌 일체 등을 개별적으로 요구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불공정 거래 등을 조사할 때도 거래 유무 정도는 확인한 뒤 금융거래 정보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각 증권사에 보낸 압수수색영장의 별지에 전 전 대통령과 두 아들을 ‘피의자’로 명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무원범죄몰수특례법이 최근에 제정된 터라 형사사법 시스템에 아직 ‘피집행자’ 항목이 없어 부득이 피의자로 적시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사실상 마지막 단계의 입증만 남겨두고 있을 뿐 계좌 개설 여부나 자금 동향 등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검찰은 증권사들에 보낸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구서에서 ‘귀사에 개설된 계좌와 관련해 조속히 회신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금융투자 업계 다른 관계자는 “단순히 정보를 취합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대신 직접 증권사들에 영장을 포함한 공문을 보내 신속한 회신을 당부하는 등 속도전에 나선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거래 정보에 대해 협조를 요청한 사항이 없다”며 “아직 금감원에는 포괄적 계좌추적권이 없기 때문에 직접 접촉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은행권보다 유동성이 높고 모니터링은 쉽지 않은 증권가가 ‘검은돈’을 숨길 장소로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자금이 움직이더라도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은행보다 ‘검은돈’ 이용에서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안 교수는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검은머리 외국인’을 이용해 국내에 재투자하는 자금세탁 등도 당연히 주식시장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이 증권가에 있다면 무기명채권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특수하고 복잡한 금융상품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투자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증권사 업무 영역으로 볼 때 검찰이 각종 특수채권 보유 정황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30억 연금예금은 선대로부터 받은 것”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부인 이순자씨 명의의 30억원짜리 연금 정기예금에 대해 “이씨 선친인 이규동씨에게 10억5000만원, 남동생 이창석씨에게 15억원을 받고 나머지 돈은 다른 은행 예금과 채권으로 갖고 있던 것을 모은 돈”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24일 검찰에 소명자료를 내고 연금예금 압류 해제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23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 이씨로부터 연금예금에 넣어둔 30억원의 출처에 관한 증빙자료를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측은 “30억원은 두 차례 걸쳐 받았다”며 “이규동씨가 사망하면서 현금 상속을 한 것이 2002년 이 여사 계좌로 10억5000만원 들어왔고, 이창석 회장이 상속받은 오산 땅을 판 뒤 누이들한테 일부를 나눠줬는데 그 돈이 15억원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따른 세금은 모두 납부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변호인에게 “검찰이 30억원을 압류했는데, 그건 정말 아니다. 어떻게 생긴 돈인지 출처 관련 자료를 준비해 검찰에 해명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4일 검찰에 상속재산평가명세서, 상속세 납부 내역, 금융자료 등을 제출할 예정이다.

지호일 전웅빈 이경원 진삼열 문동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