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처럼 스러진 비운의 스타 PD… 드라마 역사 큰획 그은 김종학씨 고시텔서 숨진 채 발견

입력 2013-07-23 18:18 수정 2013-07-24 08:02

‘수사반장’ ‘인간시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지난 30여년 동안 안방극장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이들 드라마를 연출한 김종학(62) PD가 23일 경기도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PD는 지난해 8월 방영된 SBS 미니시리즈 ‘신의’의 출연료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경찰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에서 차례로 조사를 받았고, 지난 17일 사기·횡령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날 영장실질심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원래 영장심사가 19일이었는데 김 PD가 출석하지 않았다. 협의를 거쳐 오늘(23일) 나오기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PD가 사업 실패로 빚이 많았고 생활고에 시달려 심한 우울증을 앓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이 방송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MBC에 PD로 입사한 그는 81년 ‘수사반장’을 만들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92년 연출한 대작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시청률이 70%를 웃돌며 그를 스타 PD 반열에 올려놓았다.

김 PD는 95년 MBC를 떠나 제작사 제이콤을 차린 뒤에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특히 그해 SBS에서 방영된 연출작 ‘모래시계’는 당시 ‘귀가시계’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끌면서 희대의 히트작이 됐다. 이후에도 ‘백야 3.98’ ‘태왕사신기’ 등 선 굵고 묵직한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명성을 쌓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연출력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촬영 현장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역시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의 모든 작품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건 아니다. 특히 ‘태왕사신기’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신의’는 김희선과 이민호, 두 톱스타를 앞세웠음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엉성한 스토리 전개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드라마의 실패는 광고판매 부진 등의 문제를 야기했고, 이는 출연료 미지급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에 따르면 ‘신의’ 출연진이 아직 못 받은 출연료는 6억4000만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고인은 사기 등의 혐의로 피소돼 지난달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중국에 체류 중이던 김 PD를 소환해 조사한 뒤 출국을 금지했다.

김 PD가 숨진 고시텔에선 타다 남은 연탄이 발견됐다. 출입문 틈엔 모두 청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고인이 남긴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엔 피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며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